영화감독 기타노 타케시는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결핍을 모르고 태어나 당신들의 결핍을 닮아 갑니다. 아름다운 저주는 태어날 때 화인으로 찍히는 일입니다.
혈육이란 말,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요.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애정을 놓을 수 없기에 더욱 깊이 새겨집니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세상 앞에 홀로 내던져진 실존입니다. 실존은 부서져도 완전히 무너질 수는 없어서 때때로 부상당한 채로 살아가기도 하지요.
엄마, 하고 부르면 여전히 먹먹한 마음이 여기에 있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끝없는 생을 구해주고 싶었던 아이도 어떤 한 곳에 여전히 있지요. 종종 누군가에겐 ‘그래도 부모님이잖아.’라는 상식이 상처가 되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래도 나이는 먹고 우린 어른이 되니까. 미움과 원망이 살면서 가장 버거운 마음이니까. 때때로 용서하고 살기도 해야 합니다. 누군가와의 화해는 나와 가장 빠른 화해가 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