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리의 위쪽에 있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작은 어촌이었고, 애인의 외할머니 식구들이 사는 작은 집이 있었지. 시골의 어른들은 유난한 것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특기가 있어서 애인과 애인의 남동생과 나를 한방에서 자게 했지. 예전엔 다 이렇게 잤다며 그 방이 따뜻하다며. 이미 훌쩍 어른인 우리들은 당황할 법했지만 너무나 촌스러운 꽃무늬가 그려진 이불과 두툼해서 질식할 것 같은 이불의 무게와 방안 곳곳에 놓인 식기들을 보면서 소풍이겠거니 하고 말았지.
그때의 밤은 언제나 불면이었고 잠에 들지 못하는 나를 살짝 부르던 애인은 해안길을 따라 길게 난 데크길을 걷자고 손을 끌었어. 파도는 치는 데 사람은 없고 조명이 하나, 둘, 멀리 셋.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 우리는 정지용과 윤동주와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던 김민부 시인에 대해서 말했고 나는 여전히 그 밤을 꿈결처럼 기억해.
어떤 기억은 정말 유난히 명확하고 그런 기억들은 마음에 화인처럼 새겨지는 일이라 지울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