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불나방인 줄 알면서도 그를 따라갔어요. 불나방은 불이 좋아서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래요. 불나방은 빛을 향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해 나는 습성이 있고 그 각도를 유지해 불주변을 돌다 보면 어느새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래요.
나는요, 그를 만나기 전에 이미 불나방이 되자고 다짐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세모든 네모든 사랑하나만 보고 달려들자고요. 이것이 사랑일까 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사랑하면서도 동행했어요. 마음이 다해야 하는 일을 마음이 자꾸 막는 일에 지쳤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사랑을 향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것이 나를 불 속으로 들게 만들어도 마음의 각도를 유지하는 사랑을 살면서 한 번쯤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불나방이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하필,
그가 내 불이 되었어요.
그 사람이 사는 곳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고 그래서 척박했어요. 그래서 이 정도 불은 금방 꺼질 거라고 자만했나 봐요. 척박한 곳일수록 불은 더 잘 붙더라고요. 그는 꺼지는 법이 없었어요. 내가 그에게 날아가면 그는 사그라들 듯 이내 더 활활 타올랐죠. 그는 자기가 불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자꾸 호수인 척 바다인 척했어요.
나는 자꾸 타들어 가면서 그가 너무 좋아서 그의 곁에 맴돌았어요. 하루는 그의 심술궂은 말에 또 혼자 울면서 친한 언니에게 말했죠.
언니. 쾌락은 자극에서 온다던데 나 정서적 마조히즘이라서 그를 사랑하는 걸까.
라고요. 없던 정신병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는 내가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타면 그도 탔거든요. 그와 나는 사랑을 하면서 다른 속도로 다른 모습으로 같이 탔어요. 서로를 안쓰러워하면서 다치면서도 서로를 안고 함께 타는 것 말고는 우리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서 슬픔을 몇 번 보았고 몇 번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 날엔 그가 제 어깨를 잡았죠. 날 잡는 그 손이 너무 다정해서 기대가 거대해지곤 했어요. 어쩌면 우리도 아프지 않고 타지 않는 마음을 서로에게 쥐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그는 지는 법을 몰라요. 가위바위보 하면 그의 세상에는 비기거나 이기는 경우밖에 없어요. 일부러 져달라고 빨리 혹은 늦게 손을 내어도 어떻게든 안 져요. 사랑은 결국 지는 게임이에요. 지는 연습을 아주 많이 해야 잘할 수 있는 것이 사랑 같아요. 그의 삶엔 없는 일이에요. 잘 지는 일은 누군가에겐 아주 어려운 일이란 것을 그를 보면서 배웠어요.
그가 내게 이별을 말하는 모습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 같았어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신념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의 삶은 제가 없어지면 다시 끝없는 삶과의 투쟁이겠죠. 하지만 그 속에서 전 그가 영원히 이기지 못할 것을 알아요. 그가 하는 싸움은 그를 무기로 싸우는 일이었으니까요. 사람은 자신을 다 버리면서 사는 법은 없어요. 있다면 그건 사랑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그는 사랑을 잘 모르니까 그 방법은 질 거예요. 나는 그런 삶에 안식처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와 헤어지고 하루는 무당을 찾아갔는데요. 가슴에 비수 꽂는 남자래요. 근데 가슴에 비수 꽂는 남자라는 말보다 혹시 짝사랑했느냐는 질문이 더 비수였어요. 왜냐하면 아니라고 말 못 했어요. 바란 것들이 아주 많아 나를 자책했다가도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짝’ 말고 그냥 함께 사랑하는 일이요.
무당이요, 나보고 보살 사주래요. 그리고 내가 무언갈 기도하며 안테나가 있어서 잘 이뤄질 거래요. 어제는 혼자 절에 가서 안테나를 켜보았어요. 종교도 없으면서 당신을 생각하며 기도했죠. 당신이 덜 투쟁하고 살기를 바란다고. 제가 없어진 세상에서 제가 남긴 사랑으로 덜 투쟁하고 더 사랑하고 살길 바란다고요.
불 없이 살아가게 된 불나방은 더 이상 타진 않지만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지를 잊었어요.
아마 오랫동안 빙글빙글 남은 자리만 보고 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