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취미가 등산이 아니었는데요, 그 사람을 만나고 산행이 좋아졌어요.
그 사람과 헤어지는 날에 저는 그 사람 집에서 받아올 물건이 많았는데 그 사람은 우리 집에 남긴 물건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것도 마치 그 사람 같아서, 언제든 떠날 사람처럼 내 곁에 있었구나 싶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근데 그 사람이 하나는 확실히 남기고 갔더라고요.
산을 남기고 갔어요.
제 취미는 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고요, 그 사람 취미는 등산이었어요. 그 사람은 인생을 효율로 살아요. 그 사람은 등산도 효율로 해요. 칼로리를 한꺼번에 태우기 좋은 운동이라고요. 그는 매일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고 주말엔 혼자 등산을 갔어요. 왜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는데요.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제가 무너지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일주일을 내가 아팠어요. 아프게 산 건 내가 아닌데 열병을 꼬박 제가 앓았어요.
그가 산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따라갈 수 있는 산이면 저도 간다고 했어요. 저는 원래 산을 타러 산을 가지 않아요. 저에게 산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어요. 산을 다녀와서 마시는 막걸리와 파전을 더 맛있게 먹고 싶은 날이면 하는 게 등산이었어요. 근데 그를 만나고 산을 타려고 산을 처음 가본 것 같아요. 원래의 그는 등산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제가 따라가면 그렇게 못 타니까 쉬운 산을 가줬어요. 저는 또 그게 그 사람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싶어 옆에서 열심히 조잘거렸어요. 당신이 원하는 만큼을 못 올라도 나랑 같이하는 산행은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길 바랐던 것 같아요.
우리는 부산에 있는 큰 산들을 가고, 부산 근교에 있는 산들도 갔어요. 그는 잘 모르는 데 사실 제 무릎이 한계에 달해서 울고 싶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요. 무릎이 약한 저는 꼬박 무리한 산행을 한 뒤엔 일주일을 절뚝거렸어요.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간월산을 다섯 시간 등산한 뒤에는 근육이 파열된 적도 있죠. 그래도 그가 좋아하면 안 아팠어요.
그와 산을 다니다 보니 산이 좋아졌어요. 산을 오르면 땀이 나요. 그리고 심장이 뛰어요. 호흡이 가빠 숨을 힘겹게 쉬면 그가 나를 돌아봐요. 혼자서 척척 산을 오르던 그가 느리게 걸어요. 나를 위해 느리게 걷는 뒷모습이 좋아서 그를 따라서 또 산을 갔어요. 사람이 없는 곳에는 가끔 뽀뽀도 해줬어요. 삼십 대도 뽀뽀 하나로 심장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산에서 알았지요.
그가 산을 알려줘서, 그를 만나는 동안 혼자서도 산을 갔어요. 그를 만나는 일은 산을 오르는 일 같았어요. 포기하고 싶고 내려가고 싶다가도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정상은 생각보다 멀고 숨은 차는 일이에요. 마음이 흔들리죠, 이제 그만 하산할까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면 나를 위해서 그만하는 것도 현명함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전 생각보다 오기가 강한 사람이죠. 오기는 때론 스스로를 괴롭혀요. 그리고 오기가 기적을 낳기도 하고요.
집에서 조금 걸으면 산을 오를 수 있어요. 장애인을 위한 평탄화 작업이 되어있는 데크길을 따라 작은 산의 정상까지 갈 수 있고 뒤쪽으로 30분을 더 오르면 작은 절이 나오죠. 그가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 않는 날이면 마음이 바닥에 있으면 산을 올라요. 그의 마음에 못 오르면 몸이라도 오르고 싶어서 산을 올라요. 산 정상에서 울면 사연 있는 여자 같아 보여요. 그래서 산에 가기 전에 모자도 눌러쓰고 마스크도 꽁꽁 쓰고 출발해요. 울려고 작정하고 올라요. 숨은 차고 얼굴이 터질 것 같아도 정상까지 쉬지 않아요. 그러면 참아온 마음과 숨이 울음이 되어 정상에서 터져요. 멀리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울고 있으면 고향 잃은 난민이 된 기분도 들어요.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좀 시원해져서 엉덩이 털고 일어나 절로 향해요.
저는 사실 무교에요. 신은 찾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을 소중한 사람을 잃고서 알았어요. 하지만 그를 만나고 다시 신을 찾게 되었어요. 소중한 사람 때문에 찾지 않았던 신을 소중한 사람 때문에 또 찾아요. 저처럼 변덕이 많으면 신이 미워할 것 같지만 절에 갈 때는 시주할 돈을 천 원이라도 꼭 챙겨가려고 노력했으니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절에 가면 대법당에 들어가 방석을 하나 가지고 앉아요. 절은 열한 번 해요. 예전에 아빠하고 절에 갔는데 열한 번 절을 하라고 했어요. 이유는 아빠 마음이래요. 어쩌면 내 마음속에 답이 있는 것이 불교인가 하고 멋대로 해석하고 저도 그때부터 열한 번 절을 했어요. 절을 하면서 빌어요. 부디 이 사랑이 그 사람에게 가닿기를, 부디 이 사랑이 부질없지 않기를, 부디 그 사람의 삶에 내가 있기를 하고 절 한 번에 한 구절씩 빌어요. 눈물은 산에서 다 흘려서 신성한 법당에선 참아요. 절을 마치고 가만히 부처님의 얼굴을 봐요. 부처님은 항상 온화하죠. 부처님의 온화한 표정에 또 왈칵 울고 싶어지면 서둘러 불전함에 천원을 넣고 나와요. 오늘은 천원만큼 다정함은 그 사람이 주셔야 합니다. 부처님. 날로 먹으시면 안 돼요. 하고 나와요.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산을 가요. 그가 없는 산은 조금 더 넓고 깊게 느껴져요. 산에서 당신을 찾다가 이제는 나를 찾으러 산을 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