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감정이 내게 말해주는 것
출근한 지 일주일째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아'라고 했다. 그리고 출근한 지 정확히 한 달 반이 된 지금도 누가 물어보면이제 진짜 적응한 것 같다고 한다. 정말 적응한 걸로 따지면 1-2주 차에 어느 정도 적응은 끝냈던 것 같다. 회사 분위기나 업무, 출퇴근길은 열흘이면 익숙해지기 충분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 있는 어디서든 긴장을 하지 않는 성격 덕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럼 나는 왜 한 달 반이 지난 지금도 '이제야' 적응한 것 같다고 하냐면,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적응은 또 다른 적응인 것 같다.
초반에는 나를 좀 몰아세웠던 것 같다. 매일 5시 반쯤 일어나서 12시에 잠드는 익숙하지 않은 시차에 피곤해하는 내가 체력 부족이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그래서 체력을 기르겠다며 주 7일 내내 퇴근하고 운동을 가서 고강도 유산소를 하고, 집에 신경 못쓰는 게 싫어서 매일매일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매일 돌리고 3일에 한번 빨래를 돌리고 그랬다. 그러면서도 피곤해서 하루 청소를 놓친 날은 어지럽혀진 집에 스트레스받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는 자소서도 써야 하고 ncs 공부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늘 쫓기는 기분이었다. 내 피로함은 내가 게으른 탓이라며 나를 채찍질하고 더 몰아세웠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난 항상 피곤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난 일주일 중 목요일이 가장 힘든데(일주일치 피로가 누적이 돼서 이 날이 유독 힘들다) 출근한 지 3주 차에는 너무 피곤하다며 회사 가기 싫다고 울다가 자기도 했다. 그러고 4주 차였던 7월 말에 생각이 조금 달라졌던 것 같다.
그 날도 별다를 거 없는 하루였다. 난 내 자신을 몰아세우다보니 예민해져 있었고, 조금이라도 내가 의도하던 것에서 벗어나면 화가 났다. 그래서 난 자꾸 혼자 삭힐 시간이 필요했고 어느정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나를 돌아보고 사유를 할텐데, 나에겐 생각할 시간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사건이 생겼다. 마을버스 아저씨가 커피 컵때매 버스를 못태워준다고 했고, 난 다 마신 컵을 보여주면서 빈 컵이라 괜찮다고 했다. 아저씨는 신경질을 내면서 그냥 타지말라고 클락션까지 울리면서 생짜증을 냈다. 사실 아저씨가 그날따라 기분이 안좋아서 나한테 분풀이를 한거라는 건 알았다. 근데 난 힘들어서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집까지 걸어가야하는 피로감과 아저씨의 짜증에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집 가는 내내 엉엉 울면서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고 친구한테 연락해서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그 때 친구가 나한테 위로해주면서 했던 말 중에 기억이 나는게 스트레스 때문에 내 예쁜 성격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보고 내가 뭘 위해서까지 이렇게 아둥바둥 하고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회사일도 열심히 하고싶고, 운동하면서 체력도 길러야하고 내 취미생활이나 청소까지 완벽하게 다 끝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깎아내면서까지 그렇게 했고 남은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아득함과 피로감 뿐이었다. 나한텐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중에도 난 항상 피곤해서 일찍 잠들기 일쑤였고 깨어있는 시간 중에도 피곤해서 관계에 집중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차차 밝고 긍정적이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피곤해하고 하소연하던 모습이 점점 늘어났던 것 같다. 우리 관계에서도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게 더 무서웠다.
그래서 8월부터는 유연함을 갖도록 했다. 청소에도 너무 목매지 않고 어지르지만 않고 주말에는 꼭 청소를 할 것, 멀리까지 출퇴근을 하고 머리를 많이 쓰는 만큼 먹고 싶은 건 다 거르지 않고 챙겨줄 것, 다시 책 읽는 시간을 늘리며 나를 돌봐줄 것 등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그 덕에 퇴근하고나서도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남아있게 되고 사고를 다시 긍정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야 정말 적응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난 앞으로 40년은 더 직장인일건데 지금 당장의 날 몰아세우지 않고 여유를 갖고 길게 보기로 했다. 벌써부터 지칠 수도 없고 매번 회사 가기 싫다며 하소연하는 내가 되는 것도 싫었다. 지금은 생각을 돌려서 오히려 평일에 집에 있으면 누워서 잠만 자고 안했을텐데 회사에 나와 바쁘게 일을 하고 빈 시간에 자소서를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게 감사하다. 일도 배우고 내 단점이었던 꼼꼼하지 못함을 고치기 위해 실천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니 회사에 나오는 게 좋아졌고 회사 사람들이 나에게 맡기는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아졌다. 긴 출퇴근 시간은 아직 익숙해지기 어렵지만 오히려 지하철을 오래 타서 앉아올 수 있고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자연스레 주어져서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든다.
요근래 읽고 있는 책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자애감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속상하고 화가 나는 거다. 요즘의 내가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면, 난 사랑하는 나를 위해 얼마나 대접해주고 있지 못한지를 떠올려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