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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an 11. 2023

김영하의 SF소설 '작별인사'를 읽고

이 세상 마지막 인간에게 고하는 인사

 

 인류가 살아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과학에 문외한이지만 난 자주 50년, 100년, 혹은 그 이후에 펼쳐질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기에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좀 더 편리하고 살기 좋은 모습이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환경이나 고령화, 과학과 의학의 남용 등 자꾸만 귀에 거슬리는 소식들로 마냥 유토피아만을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이러한 나의 호기심의 발로에서 선택한 것들인그중 하나가 김영하 작가의 SF소설인 '작별인사'였다. 박학 다식한 작가로 알려진 그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설레는 궁금증을 안고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주인공 철이는 휴머로이드 제작회사로 유명한 휴먼매터스 랩이라는 회사의 연구원인 아빠 최진수 박사와 휴먼매터스 캠퍼스 안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통일을 이룬 대한민국 정부군과 정책에 있어 그에 반대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끊임없는 국지전으로 위험한 상황, 아빠의 외출금지에도 불구하고 철이의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자꾸만 커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철이는 아빠를 마중 갔다가 낯선 휴머로이들에게 붙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곳은 미등록 휴머로이들과 불법으로 복제된 클론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철이는 그곳에서 민이와 선이라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 또한 휴머로이드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의 수용자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눠졌다. 먼저 자신들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휴머노이드들을 기계파라고 불렀다. 민이처럼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흉내 낸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들이 그다음 부류, 나머지는 선이 같은 인간들이었다.


수용소에서의 생활, 탈출, 아빠와의 재회, 갈등 등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생각들이 철이를 괴롭힌다.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등장하는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생각을  중심으로  번 살펴보았다.


<최진수 박사>
휴먼매터스 랩소속 휴머로이드 제작자.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가지면서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 나갈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를 꿈꾸며 철이를 만들었다. 철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라 생각한다.


<민이>
애완용으로 만들어졌다가 버려진 휴머로이드.선이는 그를 두고 실패한 쇼핑의 산 증거라고 했다.


<선이>
장기이식이라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인간배아를 복제해 만들어진 클론. 그녀만의 심오한 철학으로 철이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며 인류의 마지막 인간으로 철이 품에서 생을 마감한다.


“...  우리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어...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선이는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간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궁극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통합된다고 생각했다. 선이는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부터,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의식이 살아 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각성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인식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개의 의식이 찰나의 삶 동안 그렇게 정진할 때, 그것의 총합인 우주정신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클론인 선이를 보며 철이는 자신이 선택할 미래에 대한 답을 얻었는 지도 모른다.


<달마>
인간에 의해 버려진 폐휴머로이드들의 몸은 버리고 의식만 업로드한 채 클라우드에서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과 연결하여 '집단지성'의 일부가 되게 만든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최신형 로봇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실행하고 있다.


 철이와 친구들이 수용소를 탈출한 후 경비병에게 쫓기는 과정에서 만난 휴머로이드 달마는 그들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들만의 집단 지성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잘 구현한 철이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철이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중에서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구현한 휴머노이드로 보입니다. 휴먼매터스에서 당신처럼 명시적인 용도가 전혀 없는 휴머노이드를 만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철이는 그들에게 묻는다.

“인간이 곧 멸종할 텐데 그들의 마음은 알아서 뭐 하나요?"


"인간처럼 무력한 존재가 우리같이 강력한 존재를 만들었다면, 그들의 유전자 정보 같은 것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바로 들여다볼 수 없고, 보아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처럼 인간에 가장 가깝게 설계된 기계를 통해서라면 훨씬 쉽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난해한 세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신념이나 생각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행동한다.

결국 아빠는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인간의 어리석은 속성인 아집과 편견에 빠져 피폐해진 채 정신 병원에서 그의 유한한 생을 마감한다.


 소위 '집단지성'을 발전시킨 기계들은 인간들의 지성까지 백업시켜 세상을 지배하게 되고 유한한 육체를 가진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멸종하게 된다.

철이 또한 뜻하지 않게 육체를 잃는 바람에 네트워크를 종횡무진하며 클라우드 내의 시스템으로의 생명을 유지하지만 달마에게 부탁해 얻은 자신의 몸으로 세상의 마지막 인간인 선이를 찾아 나서게 된다.

머나먼 오호츠크해 넘어 차디찬 시베리아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선이, 그녀의 마지막을 지키며 철이는 지구 최후의 인간인 선이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또한 죽음에 직면한 순간, 깊은 상념에 빠진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철이는 마침내 영생의 삶을 포기한 채 선이가 말했던 우주정신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뭘 한단 말인가. 나의 의식은 인간과 소통하며 지내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없다. 옆에서 나를 핥으며 낑낑대는 개들 말고는...
 내가 없더라도 개들은 이 풍요로운 들판에서 잘 살아갈 것이다. 달마는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고, 선이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우주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라고 했다.



 

인간의 멸종, 고도로 발달한 기계지능의 세계 지배...

어떻게 보면 소설의 결말은 지극히 충격적이고 비관적이다.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소설을 읽고 부인이 눈물을 흘렸다고 언급한 것처럼 나 또한 한 편의 슬프고 애잔한 휴먼스토리를 읽은 느낌이었다.


 그러한 미래가 내 삶의 여정 안에는 포함되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바탕이었겠지만 주변인물이 되어버린 여타 인간들의 모습과는 달리 인간과 너무 닮은,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인 한 휴머로이드의 고난한 자아 찾기에서 진한 씁쓸함과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작가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형체가 없는 영생의 삶과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해... 

어디까지가 인간이며 또한 어디까지가 로봇인지에 대해...


 독자로서 인간의 고유함과 위대함을 피 터지게 역설하는 인간은 왠지 어리석어 보이고 오히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들이 더 인간다워 보이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가공된, 현실을 기반으로 유추하고 상상한 미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문제를 던지고 고민할수록 조금은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나 또한 미래에 대한 관심을 저버릴 수가 없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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