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마지막 인간에게 고하는 인사
그곳의 수용자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눠졌다. 먼저 자신들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휴머노이드들을 기계파라고 불렀다. 민이처럼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흉내 낸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들이 그다음 부류, 나머지는 선이 같은 인간들이었다.
<최진수 박사>
휴먼매터스 랩소속 휴머로이드 제작자.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가지면서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 나갈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를 꿈꾸며 철이를 만들었다. 철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라 생각한다.
<민이>
애완용으로 만들어졌다가 버려진 휴머로이드.선이는 그를 두고 실패한 쇼핑의 산 증거라고 했다.
<선이>
장기이식이라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인간배아를 복제해 만들어진 클론. 그녀만의 심오한 철학으로 철이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며 인류의 마지막 인간으로 철이 품에서 생을 마감한다.
“... 우리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어...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달마>
인간에 의해 버려진 폐휴머로이드들의 몸은 버리고 의식만 업로드한 채 클라우드에서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과 연결하여 '집단지성'의 일부가 되게 만든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최신형 로봇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철이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중에서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구현한 휴머노이드로 보입니다. 휴먼매터스에서 당신처럼 명시적인 용도가 전혀 없는 휴머노이드를 만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인간처럼 무력한 존재가 우리같이 강력한 존재를 만들었다면, 그들의 유전자 정보 같은 것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바로 들여다볼 수 없고, 보아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처럼 인간에 가장 가깝게 설계된 기계를 통해서라면 훨씬 쉽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난해한 세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뭘 한단 말인가. 나의 의식은 인간과 소통하며 지내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도 없다. 옆에서 나를 핥으며 낑낑대는 개들 말고는...
내가 없더라도 개들은 이 풍요로운 들판에서 잘 살아갈 것이다. 달마는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고, 선이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우주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