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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an 27. 2023

'물질적 풍요'속에 숨겨진 섬뜩한 경고

김태형의 '풍요중독사회'를 읽고


심리학자 김태형의 '풍요 중독사회'는 이전에 읽었던 동일 저자의 '가짜 행복을 권하는 사회'와 맥을 같이 하는 저서이다.


경제성장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 수준이 더 이상 삶의 질이나 행복과 비례하지 않거나 혹은 반비례하는 현상을 '풍요의 역설' 또는 이를 주장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부르는데, 저자 김태형의 논지는 이 이론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크게 가난-불화 사회, 가난-화목 사회, 풍요-불화 사회, 풍요-화목 사회, 이렇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더 피폐해지고 우울해졌으면 서로를 향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물질적인 풍요가 왜 사람들을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는 점점 더 첨예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그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는 1980년대부터 부분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허용하던 대부분의 자본주의 체제 나라들이, 사실 개인의 끝없는 부의 축적을 용인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전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저자는, 소수가 전체 부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짐으로써 부의 분배가 비정상적으로 편중되었고, 평등 수준은 크게 낮아졌으며, 그로 인한 사회적 불화는 더욱 심각해져 결국 전형적인 풍요-불화 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단순히 4~5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진 과거 사회에서는 계급 간의 불평등은 존재했으나, 계급 내에서는 오히려 서로 뭉치고 협동하는 화목한 관계가  존재했었고, 때론 계급 간의 불화가 사회적 변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계층으로 나뉘어 계층 간의 불화뿐만 아니라 계층 내의 불화까지 심화되고 있다.

오히려 도덕성에 상관없이 위계 피라미드 꼭대기 층의 사람들을 감히 넘볼 수 없는 선망의 대상으로까지 숭배하는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반면, 같은 위계 내에서는 대다수가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치킨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현재의 풍요-불화 사회에서 생존과 존중을 위협하는 조장된 불안에 내몰려 끝도 없는 물질적인 풍요를 갈망하며 상승 욕구를 채우려 하지만, 오르고 올라도 끝없는 위계의 피라미드 내에선 더욱 고통받고 불안해지는 도돌이표 같은 악순환을 겪을 뿐이다.


 오직 부를 독점한 소수만이 유리한 사회(사실 그들조차 그들만의 불안으로 또한 행복하지 않다),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존 불안존중 불안을 메우기 위해 끝없이 풍요를 갈망하지만 그저 또 다른 불안으로 그 자리를 채우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인류가 풍요중독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풍요불화사회가 인류 역사상 가장 불안 수준이 높은 사회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안은 곧 고통이고, 고통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인류는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돈과 물질적 풍요에 의존하게 되었고, 결국 풍요중독자가 되었다.                                                
                                        •••

                                                                  ㅡ  본문 중에서


 우리가 풍요-불화 사회에서 풍요-화목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선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절실하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영화 <헝거 게임>에는 어떤 섬에 사람들을 몰아넣고는 서로 싸우게 만들어 마지막 생존자 한 명만 살려주고 상금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조건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경쟁자가 화살을 쏘면서 덤벼드는데, 그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거나 마음 수양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진정한 해결책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명에게만 상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생존해 공정하게 상금을 분배받는 식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풍요-불화사회를 풍요-화목사회로 바꾸려면 사회제도를 바꿔야 한다. 개인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호소하기 전에 서로 싸우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부터 만들어야 한다.
                                        •••

                                                                  ㅡ  본문 중에서

 

 저자는 지금의 풍요불안사회를 풍요화목 사회로 바꾸기 위해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크게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겪고 있는 생존과 존중에 대한 불안을 국가차원에서 여러 가지 제도(무상교육, 무상의료, 임대주택제도, 실업대책등)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해법의 일환으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것을 두 번째 과제로 뽑았다. 모든 국민이 가장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그다음 문제인 존중불안은 물론 타인과 국가에 대한 의식전환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올바른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 내에서도 노동자의 경영참여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 나아가 생산성도 높일 수 있는 조직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로서, 예로부터 상대방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념적으로 몰아가는 고질적인 병폐를 안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 과제로, 우리나라가 이런 불안하고 긴장된 체제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하루빨리 남북간의 관계가 평화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문제들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또한, 그 어느 것도 단기간에 이루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만큼 모두의 고민과 논의가 요구되는 무게감있는 과제들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고도의 과학기술과 그로 인한 생산량의 증대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오히려 정신은  피폐해져 나날이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들로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님도 말씀하셨다는 '젖과 꿀이 흐르고 늑대와 양이 함께 뛰노는 나라'인 풍요화목사회는 정녕 요원한 것일까? 


이제 진정 어려운 발걸음을 떼기 위한 공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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