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 머얼메이드 (5)

미스터엠과의 조우

by 정현미


에릭과 대화를 재개한 건 규진이었다. 메일의 유효기간을 하루 앞두고 가까스로 접속한 미스터 엠과의 조우 이후 해답의 실마리라도 찾고자 했던 그는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진 상태였다.


" 나의 존재는 이 세계의 번영과 발전 하에서 의미를 가지지. 너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야. 내가 너의 부름에 응답한 건 한낱 개인의 고민 따위를 들어주려고 해서가 아니야. 너의 고민이 장차 이 커뮤니티, 나아가 이 세계의 발전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해서지."

규진이 첫 대면에서 오는 위압감으로 주뼛거릴 때 미스터 엠이 한 말이었다.


"너의 고민을 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커뮤니티 전체의 관점으로 더 크게 보라는 의미인 것 같아. 막연히 현실이 싫다는 문제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이 커뮤니티가, 나아가 이 세계가 과연 너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 뜻이 아닐까?"

에릭의 해석을 듣고 난 규진은 생각이 더 많아졌지만 어렴풋이나마 앞으로의 고민 방향이 설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세계가 갖는 의미? 과연 이 세계에 한 발만 걸치고 있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이 세계를 완전히 떠난다면? 그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 규진은 고개를 세게 흔들며 몸서리쳤다. 아니면 그 반대는?


"고민은 치열하게 하되 결정을 내린 순간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인어공주가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포기하거나, 파우스트가 젊음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처럼 말이야. 목표의 달성여부와 관계없이 감당해야 할 대가가 크다는 걸 염두해둬야 할 거야."


며칠 후 규진은 교복 위에 긴 팔 후드 티 차림으로 학교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터 엠과의 마지막 대화를 끝낸 다음 날이었다. 근 열흘남짓 다소 느슨해진 태도 때문에 원장의 질타와 협박이 이어지고 있었고 약속한 한 달을 일주일정도 남겨둔 날이기도 했다. 아무 연락도 없이 학원을 빠지고 시외버스에 올라탄 규진은 에릭에게서 건네받은 현실세계의 주소와 미스터 엠으로부터 온 가상세계 주소가 입력된 휴대폰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고, 네가 가장 먼저 의논하고 싶은 대상을 주위에서 찾아봐. 그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해답의 실마리를도 줄 거야. 하지만 결정은 반드시 네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

일주일 정도의 고민 끝에 어젯밤 미스터 엠에게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어떤 방향이든 선택을 결정했을 때 접속해야 할 사이트 주소를 전달받음으로써 세 번에 걸친 미스터 엠과의 대화가 종료되었다.

거듭된 고민으로 잠도 잊은 규진은 창밖의 어둠이 어슴푸레 떠오른 햇빛에 물들 때 즈음 곧바로 에릭을 호출했다. 에릭의 반응을 기다리며 키보드 위에 올려진 규진의 손에선 실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자 울긋불긋 물든 산과 들판이 시야에 펼쳐졌다. 규진은 창밖을 응시하며 어제 에릭이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하게 돼. 자신의 레벨이 막힘없이 승승장구할 땐 이곳이 카타르시스역할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현실세계의 무게가 자신을 짓눌러오는 상황에서 레벨의 상승마저도 지지부진해버리면 그야말로 사면초가지.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어져 버리는 거야. 한마디로 양쪽 공간 모두에서 다 사라져 버리고 싶을 뿐이지."


잠깐의 침묵후 채팅창의 커서가 다시 에릭의 말을 뱉어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쪽 세계에서라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생기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끼지.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말이야. 지금 랭킹 10위에 든 캐릭터 대부분이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섰었고 그런 선택을 했기에 여기에 존재한다고 보면 될 거야. 나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네 차례가 온 거지."


경기도 ㅇㅇ시 ㅁㅁ번지 403호


잠시 대화를 중단한 에릭은 화면에 주소 하나를 띄웠다.

"내가 최근까지 살던 집주소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거기서 힌트를 찾아봐. 그리고 신중하게 결정하길 바래. 우린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충분히 존중하니까."


도착한 터미널에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탄 규진은 20분쯤 뒤에 원룸들이 즐비한 한 장소에서 내렸다. 한동안 3,4층 높이의 비슷한 듯 이질감을 풍기는 건물 숲 사이를 헤매던 그는 세월에 치여서인지 유독 지쳐 보이는 한 허름한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태양이 막 그 모습을 감추기 전 마지막 자태를 자랑하듯 뿜어대는 화려한 빛깔에 물든 그 건물은 배경과 대비를 이루면서 더욱 쓸쓸해 보였다.


규진이 건물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을 때 마침 쓰레기봉투를 든 중년의 여인이 입구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규진은 그녀 어깨너머로 '원룸임대'라고 쓰여진 벽보를 보고는 후드티의 지퍼를 끝까지 채운 후 그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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