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에 들어서자 카운터 위 천장에 음이 거세된 채 매달려있는 TV에서 뉴스가 한창이었다. 연일 대서특필 되고 있는 실종사건에 관해 여전히 아무런 단서 하나 찾지 못하는 경찰당국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 같았다. 마지막 실종자가 발생한 지 두 달을 넘긴 상태였다.
카메라에 실종자들의 사진이 박힌 전단지를 든 사람들 중에 유독 지쳐 보이는 초로의 부부가 클로즈업되었다. 화면 아래 자막 내용으로 짐작컨대 최근 사라진 피해자의 부모들 같았다. 이제 흘릴 눈물도 말랐는지 부모들의 얼굴은 물길 자국만 남은 채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았다.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3년째 취업준비 중이라... 꾀죄죄한 싸구려 트레이닝 상의를 걸친 그의 초췌한 상반신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아 규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PC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주말에 자주 이용하는 좌석이 비어있어서 자리를 잡고 심호흡을 한 뒤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대회 막바지라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멤버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에릭도 접속상태였다. 그는 두어 달 전부터 규진이 들어올 때마다 늘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른 멤버에 의하면 다른 시간대에도 활동한다고 하니 아예 커뮤니티에 상주하는 것 같았다. 오프라인상의 그의 직업이 잠시 궁금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저 오늘 같은 날 규진에겐 세상 그 누구보다 부러운 대상이었다.
“어, 오늘은 접속할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웬일이야?"
아니나 다를까 에릭이 규진을 보고 먼저 채팅을 걸어왔다.
"아니, 그냥 대회도 얼마 안 남았고 해서..."
"하긴... 요즘 잘 나가다 좀 주춤하던데, 우리 유망주님이 힘내셔야지”
그동안 막힘없이 뚫고 올라가던 규진의 순위가 랭킹 100위 진입을 앞두고 다소 부진함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 에릭은 최근 들어 눈부신 활약으로 랭킹 50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시간이 많아 항상 연습하는 상대와는 다르겠지.”
격려차원에서 한 말인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는 생각이 들자 규진은 반사적으로 삐딱하게 받아쳤다. 몇 초간의 침묵 후 에릭은 조심스럽게 대화를 재개했다.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규진의 시야가 흐려지더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뭘 안다고... 키보드 위를 달리던 규진의 손이 잠시 멈췄다. 대화창에 깜박이는 커서가 흐릿해 보였지만 그는 애써 눈물을 닦으려 하지는 않았다.
"얼마 전까진 나도 그랬어... 너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 고까울 것 같았던 그의 말이 의외로 규진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전에 말한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의무들이 언젠가부터 나를 짓눌러 오기 시작했어..."
규진의 눈은 어느새 커서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낼 수가 없었어."
커서가 그대로 옮긴 에릭의 말 중에서 유독 규진의 이목을 끄는 표현이 있었다.
"특단의 조치... 그게 뭐야?"
그 말을 듣자 뭔가 답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희뿌연 새벽연무를 가르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의 실루엣처럼 규진을 향해 다가왔다.
"그게... 잠시만 기다려."
MisterM@ mephisto....
10여분쯤이 지나자 규진의 화면에 낯선 주소가 나타났다.
"닥터 엠의 메일주소야. 일주일 안에 연락해 기간을 넘기면 접속이 차단될 거야."
얼마 전부터 바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어 규진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엄마였다. 부재중 통화가 10여 통에 문자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며 흘깃 본 시계는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PC방을 나서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니? 전화는 왜 안 받아? 학원 수업 끝난 지는 한참이라던데, 요즘 세상이 어수선해서 바로 오라고 했잖아? 규진은 2시간 동안 가슴 졸였을 엄마의 걱정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을 오롯이 견뎌야 했다. 규진이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한층 안정을 찾은 듯했다. 원장님이 전화하셨어. 빨리 와..
닥터 엠과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규진은 쉽사리 접속을 할 수 없었다. 학원 원장은 엄마와 통화한 후부터 규진을 밀착관리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보다 1시간 일찍 부를 뿐만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완성할 때까지 귀가시키지 않았고 심지어 주말까지 등원시킬 기세였다.
엄마의 얼굴에 조금씩 물드는 생기를 외면할 수 없어 규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식사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주말등원 얘기를 꺼내는 엄마와 마주하자 규진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 위에 무게감 있게 내려놓으며 가방을 메고는 바로 집을 나와 버렸다.
오늘은 기필코, 기필코... 학교로 향하는 규진의 발걸음은 딱딱하게 굳은 포장도로 위에 발자국이라도 새길 기세로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