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 머얼메이드(6)

다가오는 선택의 순간

by 정현미


돌아가는 시외버스 막차 시간이 빠듯해 규진은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탔다.

"학생, 여기 사나?"

원룸 앞에서 부랴부랴 택시에 올라탄 규진에게 나이가 지긋한 택시기사가 물었다.

"아... 니, 친구가 살아요."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실종됐던 그 청년은 돌아왔는가?"

"네? 무슨 말씀이신지..."

" 몰랐어? 이 지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하루종일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그 실종된 청년 말이야. 이번이 10번째라지... "

백미러로 규진을 흘깃거리던 택시 기사는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었던지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라디오를 틀었다. 무안힘의 수치만큼 높아진 볼륨 탓에 택시 안은 어느새 그렇고 그런 음색의 트로트로 가득 찼다. 절정으로 치닫는, 간드러진 고음의 노랫가락 때문이었을까? 규진은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버스에 앉자마자 전원을 켠 휴대폰에선 연신 진동음이 울리고 있었다.

'오늘 일이 있어 좀 늦을 거예요.'

학원에서 집으로 연락이 갔을 때 즈음에 온 엄마의 문자에 답을 했건만 휴대폰은 여전히 열일 중이었다. 학원과 집에서 온 수 십 통의 전화와 문자를 스킵하며 확인하던 규진의 손길이 한 문자에서 멈추었다. 아빠였다. 어쩔 수 없이 답장을 했다.

'곧 가요'

집 근처 PC방에 도착한 건 10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 규진은 비어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순간 몇 시간 전 원룸에서의 일이 생생하게 다가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학생이 계약한다면 여기 있는 짐은 금방 치워줄게요."

규진이 우겨 구경하게 된 403호는 작고 초라한 방이었다.

벽지를 새로 발랐는지 아직 마르지 않은 밀가루풀 냄새를 머금은 그 방은 에릭이 미처 챙기지 못한 컴퓨터와 소소한 짐 몇 가지가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목이 마르다는 규진의 부탁으로 생수를 가지러 가던 주인여자의 발걸음이 잦아들고 그 작은 공간에서 규진과 막 에너지를 공급받은 컴퓨터만이 오롯이 서로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전원을 켰지만 컴퓨터 화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블랙아웃된 건 아닌지 규진이 본체를 이리저리 쳐가며 시간에 쫓기는 스파이처럼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던 바로 그때, 컴퓨터는 마치 살아 숨쉬는 유기체처럼 폐부 깊숙한 곳에서 토해내듯 까만 바탕 위에 노란 빛깔의 파일 하나를 뱉어냈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usb에서는 어느새 손에서 옮겨왔는지 끈적한 물기가 느껴졌다. 규진은 무슨 신성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usb를 꺼내 PC방 컴퓨터에 꽂았다.

그곳엔... 에릭이 있었다...


서류전형에서 한 10번쯤 떨어졌을 때 난 깨달아야 했어. 공부를 꽤 한다는 것이 축복만은 아니었음을...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결코 이 길이 내 길이 아니었음을... 20번쯤 고배를 마셨을 때 멈췄더라면 틈틈이 1차 합격이라는 미끼를 던져서 포기하려는 나에게 희망고문을 하며 늙은 에미, 아비의 쓰러져가는 집마저 저당 잡히는 일은 막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는 마지막 남은 나의 자존심까지 등쳐먹으며 100번째의 이력서를 찢었어. 그리고 깨달았지. 너무 늦었음을. 이미 이력서와 함께 나의 영혼도 갈기갈기 찢겨 흩어졌음을...

•••••

아~나에게도 재능이 있구나. 누군가의 관심과 환호를 받을 분야가 남아있었구나. 물론 최근 들어 하루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결과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분이었어. 내가 아직 쓰일 때가 있다니.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니. 정말이지 모처럼 살아도 되겠다는, 무언가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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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슬럼프가 왔나 싶었어. 이제껏 치솟던 랭킹 순위가 근 몇 달 동안 100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어. 값비싼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는 내 처지로는 오로지 실력으로만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데... 한계가 온 거야. 여기서 또 다른 실패를 맛보고 싶진 않아. 다시는 지옥의 구렁텅이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모든 걸 끝내야 하나? 아~악마에게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해결책을 찾을 수만 있다면...

•••••

드디어 미스터 엠과 만났어...


'지금 어디야? 당장 들어와.'

연신 울려대는 휴대폰의 진동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문자에서 아빠의 표정이 느껴졌다. 규진은 옷소매로 눈가를 한 번 훔치고는 usb를 빼서 방금 전까지 휴대폰을 품고 있던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은 후 가방을 챙겨 PC방을 나섰다.


선택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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