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진은 불이 꺼진 자기 방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선 아파트맞은편 동, 잠 못 드는 몇 개의 불빛만이 창문의 형체를 어루만질 뿐 방안의 어둠은 감히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얼얼한 왼쪽 뺨을 어루만지는 규진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득였다. 얼마 전까지 이어졌던 아빠의 추궁에 규진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으로 응수했다. 어쭙잖은 반항이 아니라 그저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을 뿐이었다. 아빠와 규진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끝내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빠가 전화로 다시 사정해 볼 테니 내일 엄마랑 원장님 찾아뵙고 잘못했다고 빌고, 앞으로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해."
긴 꾸지람 후에 아빠 나름의 타협안으로 내놓은 이 말에 줄곧 머리를 숙이고 미동도 하지 않던 규진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최소한의 마지노선만은 사수하겠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며 절규하듯 말했다.
"싫어요."
순간 아빠의 분노 어린 손이 규진의 뺨을 향해 날아들었고 둘 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엄마의 손이 우악스럽게 규진을 끌고 방안으로 대피시켰다. 한 동안 아빠의 짐승 같은 표호가 이어졌지만 이내 엄마의 흐느낌으로 악몽 같았던 그때의 상황이 종료되었다.
흥분한 규진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컴퓨터의 전원을 켰을 때 코드의 끝부분이 잘려나간 걸 알았다. 순간, 규진은 치솟는 분노가 응집된 주먹으로 책상을 서너 번 치고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여전히 암흑 속에 몸을 묻은 채 침대에 누워있던 규진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통증의 출처가 뺨인지 주먹인지 분간할 수 조차 없었다.
그의 기분도 이랬을까? 문득 일기처럼 써 내려가던 에릭의 절망이 자신의 뼛속 깊이 이식된 것 같아 규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날, 규진은 날이 밝기도 전에 휴대폰만 챙겨 들고 평상복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학교와 반대 방향으로 몇 정거장 걸어가던 그의 시야에 간판 불이 켜진 건물 하나가 들어왔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들른 적이 있는 24시간 PC방이었다.
드문드문 잠든 사람과 게임에 집중하는 사람 서너 명, 주인인지 알바 생인지 피곤에 절은 카운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후드 티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쓴 규진은 될 수 있으면CCTV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미스터 엠과의 마지막 조우에서 건네받은 웹주소에 링크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항들이 쭉 나열되었다.
'머얼메이드 프로그램에 접속하시겠습니까?'
페이지 마지막에 접속여부를 묻는 창이 떴다. 침을 꿀꺽 삼킨 뒤 긴장된 손짓으로 예스에 클릭하자 재차 확인을 묻는 창이 한 번 더 떴다.
`동의 후엔 전적으로 취소가 불가하며 동의여부를 입력하는 즉시 모든 프로그램은 소멸됩니다. 필수사항을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 주세요.'
정말로 프로그램 접속에 동의하십니까?
규진의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슬로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깜박이는 커서를 응시하며 마우스를 잡은 규진의 오른손이 경련이 일 듯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