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 머얼메이드'는 제목이나 내용에서 짐작하듯이 인어공주와 괴테의 파우스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다. 소설이 거의 완성되어 갈 즈음, 제목을 고민해야 시기에 이르자 섬광처럼 머리에 떠올라 붙이게 되었을 따름이다.
사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첫 소설 '그녀'와 두 번째인 '코드명 머얼메이드'는 재작년 12월 신춘문예에 투고해 실패를 맛본 작품들이다. 살아오면서 소설이랍시고 끄적거리던 것들은 몇 편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끝을 보고 지난한 퇴고 과정을 거쳐 무언가를 완성한 것은 이 두 편이 처음이었다.
유독 문턱이 높고 경쟁률 또한 만만찮은 신춘문예에 중년이 넘어 감히 도전장을 낸 건, 기필코 바늘구멍을 통과하겠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꿨다기보다는 어쩌면 이렇게라도 시한을 정해 나를 몰아넣지 않고서는 하나라도 제대로 완성된 글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작품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중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드는 나의 무능과 가난한 재능에 대한 자괴감, 쓸수록 난해해지는 글쓰기의 낯섦에 당황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대로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난독증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감을 한 달 앞두고 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왕 시작한 일, 머리를 어지럽히는 모든 생각들을 접고 일단 완성에 방점을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어 수많은 퇴고와 자체 편집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글쓰기 못지않게 편집 또한 쉽지 않은 과정임을 새삼 느꼈다. 생각 나는 대로 무작정 쓰다 보니 어느새 글은 두서없이 길어졌고 어느곳에 투고하든 심사위원들의 눈앞에라도 놓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라도 주최 측이 제시한 조건에 맞춰야 했다.
각 신문사가 제시한 단편소설의 마지노선은 원고지 70~80매, A4용지로는 8장 내외였다. 불필요한 부분이나 없어도 될 내용들을 선별하기 위해, 그리고 빠진 부분의 앞뒤 내용을 매끄럽게 잇기 위해서라도 퇴고로 만신창이가 된 소설을 수십 번 다시 읽어야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한 원고를 손수 우편으로 부치고 우체국을 나섰을 때, 결과야 어찌 되었든 난 무슨 대단한 작품을 탈고한 작가처럼 잠시 뿌듯했었다.
무언가 완성했다는 충만감, 또 다른 자식들이 생겼다는 뿌듯함, 결국 이 모두가 자기만족일 뿐이었지만 이러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 아이들을 다시 소환한 건 거의 1년 만이었다. 기록으로 남기고자 브런치에 올리려고 노트북을 열었을 때, 아뿔싸, 이 구닥다리 노트북에서 그동안 썼던 수필형식의 글과 미완성 소설들이, 이 두 편의 소설 완성본과 함께 자취를 감춘 뒤였다. 내 일생일대의뼈아픈 실종사건이었다. 며칠 동안 자포자기에 빠져있다가 퇴고하느라 몇 번 출력해 뒀던 완성 전 원고들을 기억해 내곤 찾기 시작했다.
퇴고의 수난을 겪은 소설
이미 써 놓은 소설이지만 천천히,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브런치에 올린 것은 졸작에 대한 나의 부끄러움도 한몫했지만 다시 읽으면서 수정, 보완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지금 세 번째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나도 미처 몰랐는데 의외로 미래에 관심이 많은 나, 굳이 다음 소설을 장르로 분류한다면 SF소설쯤 되려나?
언제쯤 완성될지, 완성할 수는 있을는지, 현재로서는 딱히 정해진 것도, 계획한 것도 없다.
큰 의미는 두지 않으려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 쓸데없는 걱정으로 잠 못 들 때, 소설의 다음 부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몸소 체험중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 글을 썼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다.
그렇다고 강박적으로 글쓰기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다음에 혹 바빠져서 글쓰기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염두에 두기로 했다.
그저 지금, 감사하게도 시간이 허락해서, 너무 쓰고 싶어서 쓸 뿐... 그것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