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소설(1)
모처럼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늦은 점심을 챙겨 먹고 남편과 얼마 전에 생겼다는 신상카페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비록 공장지대에 둘러싸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나 죽고 못 사는 강뷰를 끼고 있다니 카페에 관한 한 얼리어답터인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예전에 이런 외출을 귀찮아하던 남편도 선뜻 따라나선다고 부산을 떨었다.
이전 직장이 큰 회사와 합병하면서 퇴직위기에 놓였다가, 다행히 집과 떨어진 중소기업에 재취업하면서 생긴 뜻밖의 변화였다. 거리 탓에 오십 중반을 넘어서면서 시작한 주말부부의 삶이 무료한 중년 부부의 금슬에 활력을 주는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카페 주변은 들고 나는 차들로 인산인해였다. 지하 2층까지 있다는 주차장 입구까지는 지척인데, 차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주차장 입구에선 주차요원이라기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한 남자가 차들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연신 수신호를 하며 드문드문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얗게 머리가 샌 그는 제법 따가운 봄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기분 좋게 따라나선 남편의 얼굴에서 조금씩 짜증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주차장 입구에 막 들어서기 직전, 차창밖을 향하던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편은 급하게 차창을 내리며 누군가에게 말을 붙였다.
" 니, 병진이 아이가? 여기서 뭐 하노?"
더 놀란 건 상대방이었다.
"어? 어...."
신호봉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내리더니 반대편 손으로 뒷목을 긁적이던 그의 낯빛은 흰머리에 대조되어 더 새까맣게 보였다. 그가 다시 입을 떼기도 전에 뒤에서 연신 빵빵거리는 탓에 도로는 다시 북새통이 되었다. 남편은 마지못해 수신호로 어정쩡한 인사를 대신하며 지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카페에 들어서자 통창을 통해 비친 강은 폐수를 품었을지언정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로 우리의 시선을 현혹시켰다. 하지만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에게 바깥 풍경은 외마디의 감탄과 함께 목구멍 아래쪽으로 사라져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남편의 옛 동료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사뭇 진지한 사건의 의뢰를 맡은 탐정처럼 남편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아마, 나보다 먼저 퇴사했을 걸. 중소기업의 이사로 간다는 소문이 돌긴 했는데... 자식도 3명이라지..."
남편은 사건의 참고인에서 의기투합한 동료로 선회한 듯 그에 대한 과거 행적에 이어, 몇 년간 만나지 못한 세월에 대해 추리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이상 어리니까 애들도 아직 손 갈 데가 많을 텐데..."
백발에 가까운 흰머리에 햇볕에 그대로 노출된 그의 새까만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남편보다 나이가 적다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주말에 시간이 있어서 투잡을 뛰는 거겠지."
"아는 사람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고..."
시절 인연이었던 그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그를 걱정하던 우리는, 정작 그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가십거리 소재에서 그를 그만 놓아주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 그는 여전히 구슬땀을 흘리며 수신호로 차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머리 위에 씌워진 낡은 등산 모자가 나의 가슴 위에 올려진 미세한 돌조각을 걷어내주었다.
우리 차가 거의 그에게 닿을 때 즈음, 남편은 그를 향해 난 차장을 활짝 내리고 작은 박스 하나를 건넸다.
"여보, 그분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고 그랬죠?"
"어~아마..."
" 여기 빵 맛있다는데, 좀 사드려도 될까?"
"굳이..."
남편이 걱정하는 점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내가 정성 들여 고른 빵이 든 상자를 남편은 넌지시 건네받았다.
남편에게서 빵 상자를 건네받은 지인의 얼굴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수고해라~, 연락할게~"
"어~,그래...."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한 손에 상자를 든 그가 수신호를 보내는 건지, 인사를 하는 건지, 머리 위로 신호봉을 든 손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 그 분 연락처도 없다면서..."
아무런 대꾸없이 운전하는 남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내가 툭 던지듯 내뱉었다.
"혹시.... 그분.... 카페 주인 아닐까?"
굳어있던 남편의 표정이 풀리면서 피식 웃었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우리의 시야에서 그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