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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의 이면'을 들여다 보다.

100개의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다.

by 정현미

브런치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사람에 따라 짧을 수도, 때론 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그동안 겪은 감정의 우여곡절로 치자면 나에겐 6개월이 아닌 6년, 좀 과장하면 16년도 더 지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지만, 그 정의 깊이만큼 넘나들어야 했던 애증의 강, 그 안에서 허우적거린 기억들로 나의 마음엔 자그마한 생채기들 또한 남았다.


처음 브런치를 알게 되고 글을 쓸 기회를 얻으면서 한동안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에 새로운 상대와 연애라도 시작한 듯 그 속에 푹 빠졌던 것 같다.

매일 새로운 글감을 찾고 몇 시간이고 정성을 담아 글을 쓰고, 사탕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맛을 고를 때의 그 반짝이는 눈빛으로 몇 안 되는 키워드를 신중하게 선택한 후 발행이라는 버튼을 누를 때의 그 짜릿함이란!

내 글에 달리는 라이킷이랑 내 글을 정기적으로 읽어주겠다는 약속의 증표인 구독자들이 하나둘씩 생길 때의 그 신기함이란 달리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이란 적응과 불평불만의 화신이 아니던가.

난 이 모든 것에 너무나 빨리 적응했고 좀처럼 늘지 않는 숫자놀음에 환멸을 느꼈다가 다시 평정심을 찾아가는 자칭 브런쳐(bruncher)의 모습으로 진화(?) 아님, 무신경의 기술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한두 달 동안은 이런저런 허황된 꿈도 꿔가며 나름 의미 있고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뭔가 시스템에 갇혀버린 듯한, 내 마음을 나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버린 듯 무기력한 상태가 한동안 이어졌다.

아마 모든 작가들이 브런치에 입문할 때 가졌던 꿈들, 소위 내 이름이 찍힌 책을 낸다든지, 작가나 강연자가 되어 새로운 인생 2막을 펼치고 싶다는 그런 것들은 이미 접은 지 오래지만 자꾸만 나를 재단질하는 숫자들이 신경을 긁었다.

대범한 작가들은 숫자에 신경 쓰지 말고 꾸준히 자기 갈 길을 가라고 현명한 충고를 지만 나같이 멘털이 약한 사람은 그저 결심만 반복할 뿐, 뜻대로 되지 않는 소심한 마음까지 얹어져 자괴감만 가중 되는 이중의 고통을 감내하는 나날을 보내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처음엔 마냥 신기하고 좋기만 했던 브런치의 시스템이 날이 갈수록 마치 빅부라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대중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어쩌면 그 위상이 제법 높은 요소이므로 그에 부합하지 않는 글은 상품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 작가가 눈치채고 알아서 자가수정을지 않으면 일찌감치 도태의 수순을 밟게 되는 건 아닌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전체 시스템의 의도에 따라, 작가들의 암묵적 동의하에 획일화의 전처를 밟고 있는 것 아닌지 노파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브런치 시스템이 점점 양극화되어 가는 우리네 사회현실과도 닮아있다는 점이다. 범접할 수 없는 몇몇의 성공 사례를 미끼로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경쟁을 부추기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이득을 얻게 되는 시스템...

노력하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어요.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열려있어요.


이 말이 작가가 되지 못한 건 다름 아닌 네 잘못이며, 네 게으름의 결과라는 말과 같은 뜻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부의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브런치 내에서도 라이킷이나 구독자 수로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했다.

왠지 구독자가 많은 작가의 글은 더 설득력이 있고, 무언가 본받거나 흉내 낼 것이라도 있는 것 같기에 그 앞에서 자꾸 주눅 들고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작가는 어떤가? 우린 브런치 내에서조차 권력관계에 좌지우지되는 그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자는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나는 브런치에 입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기에 초기 시스템이나 얼마 전 바뀐 시스템의 차이를 잘 모를 뿐더러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브런치에 올라오는 몇몇 작가님들의 글에서 알게 된 바로는 많은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과연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인가 의구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물론 브런치에서 지향하는 글을 본보기로 참고하면서 그 방향에 맞게 글쓰기를 변화발전시키라는 좋은 의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양날의 검으로 상업적인 글이 좋은 글이라는 편견과 사전검열의 또 다른 버전임을 충분히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다.


모든 것을 양보해서 이제껏 제시한 것들이 개인 역량의 문제라고 치부한다고 해도 내가 제일 우려하는 것은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함, 자괴감... 그리고 이어지는 절필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수순과정이다. 어쩌면 나 역시 그 과정의 어디메쯤 서있는 지도... 그래서 이것이 나 자신에게 보내는 SOS는 아닌지 자문해 본다.


브런치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글 자체를 쓰기 싫은 날도 많았고 내 실력의 바닥이 드러날까 브런치앱을 켜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은 그래도 글 100개까지는 써보자는 거였다.

오늘 마침내 목표로 했던 100개째의 글을 마주하자니 감개무량이 지나쳤는지 주저리주저리 내 탓보다 시스템 탓만 늘어놓는 어느 못난이의 자기변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100번 째의 글을 쓰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10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를...

그건 완성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100개쯤 쓰면 뭔가 이루어지겠지... 100개쯤이면 나의 재능을 가늠해 보고 포기하든지 계속하든지 결정이 나겠지...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었다. 100개를 쓰는 시간 동안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감정과 만나면서 쓰러졌다 일어나고, 다시 쓰러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무뎌지고 있었다.

시간상으론 결코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100개의 생각과 100개 이상의 반응에 직면하면서 난 또 다른 사회에 다름 아닌 브런치에서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길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100번 째의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나의 의식을 흐리던 안개 같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무엇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101번째부터 부여할 나의 새로운 목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들이었다.

여기에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글을 쓰면 좋은 점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기에 시간에 인색한 나도 하루의 대부분을 글에 사용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뿐이다. 글로써 뭔가를 이뤄보겠다는 생각은 내 능력밖의 일, 더 이상 욕심내지도, 그럴 수도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막연한 푸념에서 시작한 100번째 글에서 내가 의도한 바를 충분히 얻은 것 같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인간으로 환골탈태한 웅녀처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101번째 글을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면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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