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월의 나이테만큼 얼굴이 두꺼워져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때론 낄 때와 빠질 때를 구별하지 못하고 오지랖을 발동시키는, 누가 뭐래도 대표적인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었지만 나도 한땐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한 움큼씩 쏟아내는 감성 충만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소심하고 숫기 없던 소녀의 관심은 다이내믹한 바깥세상보다 고요한 내부 세계로 향했고 그렇게 책과 조우하며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해 가던 유년시절을 보냈다.
돌아가신 지 한참인 아버지는 나의 이런 모습을 썩 반기지 않으셨다. 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버거운 삶 속에서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책을 끌어안고 뒹굴뒹굴 소일하는 병약한 둘째 딸이 영 못마땅하셨는지 드라마에서나 접할 듯한 말들을 내뱉곤 하셨다.
책에서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그땐 무슨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달리 바깥에서 흥미를 찾지 못한 내성적인 계집애의 시간 때우기 소일거리였지만 어쩌면 책 속에서나마 벗어날 수 없는 이 가난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나름대로 피 터지는 노력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니 부지불식간에 책의 목적에 철저히 부합한 독서를 한 셈인지도 모른다.
20대가 저물 무렵 결혼이란 걸 한답시고 내가 먼저 챙긴 것은 거창한 혼수 대신에 힘겨운 세월을 함께 견딘, 정이 든 책 꾸러미들이었다.
어느새 좁은 집안 벽 한 면을 가득 채웠던 책장이 비워지던 날, 앓던 이 빠지듯 시원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제법 긴 세월을 함께 했던 나의 전우들은 몇 번의 이사라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며 전사하거나 혹은 흩어져 갔고 옛 친구가 비우고 간 자리는 곧 다양한 아동도서와 그림책들로 채워지곤 했다.
얼떨결에 부모역할을 맡아 생존이라는 전쟁터에서 가족들을 지켜내느라 선봉장에 섰던 나는 2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옛 전우 들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아니, 그들과 함께한 옛 감성에 젖어 들면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철저히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 새로운 장을 함께할 전우들을 찾았을 때 세상은 참 많이도 변해있었다.
하지만 무슨 착각에서였을까? 난 곧 그들을 따라잡아 유려한 문장으로 능수능란한 소통을 이뤄내리라 생각했었다.
이러한 나의 착각은 학창 시절 옛 전우들의 도움으로 수상하곤 했던 공신력 없는 몇몇 글쓰기 상들과 인사치레로 뱉는 지인들의 의미 없는 칭찬들, 그리고 무엇보다 근거 없는 나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러한 나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를 좋아해 물어물어 찾아온 브런치에서였다.
당시 하던 일을 작파하고 백수였던 나를 소개하라며 제시한 브런치의 몇몇 키워드에서도 사실 나를 적절히 설명하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마저 나에게 허락된 단어는 주부와 작가 지망생뿐, 브런치 입장에서도 주부가 좀 뭣했던지 작가 지망생이라는 명칭을 내 이름 아래에 달아줌으로써 나는 어느덧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 노릇을 해야 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초기의 글들과는 달리 여전히 방황하는 내 마음처럼 방향을 잃어가는 글들... 무시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심리를 압박하는 숫자들의 중압감에 난 다시 블로그에서 느꼈던 알고리즘의 덫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그 숫자들이 나의 글을, 더 나아가 나 자신을 평가하는 보이지 않는 감시자들의 시선처럼 느껴지기시작했다.
바깥세상의 등수 매기기에서 탈출해 닿은 곳 또한 숫자로 줄 세우는 곳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그것도 그렇게 좋아하던 글쓰기의 장에서?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친 나태주 시인의 말씀,
세상에 좋은 글, 나쁜 글은 없다고... 다만 내가 좋아하는 글과 좋아하지 않는 글이 있을 뿐...
자꾸 처지는 무력감에... 마음 닿는 어느 곳에서든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부여잡고, 그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 중에 섬광처럼 다가온 말이었지만 이내 '글쓰기와 대중성' 이란 또 다른 난제에 맞닥뜨린 꼴이 되었다.
무슨 일정한 주기처럼 찾아와 시종일관 사람을 들었다 놨다 괴롭히는 이 회의감은, 글쓰기에 대한 내 무능함은 차치하고라도 그 목적이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결국 내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며칠의 장고 끝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난 하마터면 내가 글 좀 깨나 쓴다고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브런치로 인해 알게 되었다.
막연한 희망고문은 벗어던지고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내 마음의 길이 닿는 대로, 내 삶의 기록으로 글쓰기를 다시 재정의하기로...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구독자수의 들고 남이나 라이킷 수로 대변되는 초라한 나의 글쓰기 성적표가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졌다.
숫자가 무난하게 늘어났다면왕관의 무게를 견딜 재간과 능력도 없으면서 그 결과를 관리하느라 제법 품이 많이 들어갔을 수고로움에 또한 지쳐갔으리라.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착각이 증명되기라도 한 듯, 때론 거드름을 애써 겸손으로 가장하며 주변에 떠밀려 헛된 망상에 기꺼이 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