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직 읽지 못한 이웃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려고 브런치 앱을 켰는데 접속이 되질 않았다.
같은 동작을 두서너 번 반복했지만 여전히 같은 상태, 지난번처럼 자동 로그 아웃되었나 싶어 다시 로그인 과정을 거칠지 말지 고민하다가 귀찮은 생각에 좀 있다 하지 싶어 그만두었다.
다음날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1년에 한 번, 연례행사처럼 가지는 1박 2일 여행이 있었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평소 빼놓지 않고 보던 뉴스도 보지 못한 채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남편에게서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카카오 테이터를 보관하는 SK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카카오톡과 다음을 비롯해 카카오가 운영하는 모든 서비스가 중지되었다는 것을.
주말 내내 외부활동으로 바빴던 나는 바깥세상의 모든 움직임에 큰 영향을 준 이번 사고에 대한 심각성은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자 이상 야릇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늘 나의 관심 한 가닥을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은근히 신경 쓰이게 하는 존재로부터 잠시 벗어난 것 같은 묘한 해방감이라고나할까?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늘 휴대폰을 너무 많이 본다며 잔소리를 해대면서 정작 휴대폰을 끌어안고 사는 건 나 자신이었다.
언젠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제일 먼저 끊고 싶었던 게 신용카드와 휴대폰이었다.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 때문이라고 그 탓을 돌려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카드와 휴대폰에 속박되는 삶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디를 가든 휴대폰의 존재 유무부터 확인해야 안심이 되고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이나 메시지를 들여다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를 요즘부쩍 자주 발견하곤 했다.
그 상황 속에 어김없이 브런치가 있었다.
나의 삶을 기록하면서 정리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경험을 나누는 순기능이 더 많지만 이에 대한 대가 또한 만만찮음을 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서 올리기까지 제법 많이 드는 시간의 품과 막다른 길에 다다른 파도처럼 한껏 출렁이는 마음 상태, 또한 그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느라 한 동안 업 앤 다운을 반복하며 들뜨는 기분, 그뿐만 아니다.
내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을 달며 수고로이 댓글까지 올리는 다른 작가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데도 나는 오롯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시를 떠나있던 2~3일 동안, 세상의 흐름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던 한 플랫폼 기업의 화재로 세상의 일부가 정지된 듯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고 그 여파 또한 만만찮았음을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야 이미 세상의 역동적인 생산과 소비 단계에서 한 걸음
물러선 상태이고 공교롭게 공간마저 번잡한 도시와 분리된 한적한 곳에서 그 시간을 보내선지, 며칠간의 소동이 오히려 아무 곳에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망중한을 즐기는데 한몫했다고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지금에 와서야 생업과 여타 문제로 곤욕을 치렀을 다른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구글이나 넷플렉스의 철저한 예방정책을 예로 들어가며 카카오의 안일한 사고와 부실한 대응에 뭇매를 가하기도했다.
물론 기업 측의 더 철저한 대비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번 경우를 통해 플랫폼 시스템이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는지, 또한 우리가 그 시스템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었는지 새삼 절감하는 계기가 되어 나로서는 약간의 두려운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브런치는 나에게 여로모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나를 성장시키는 인생의 또 하나의 정거장 (플랫폼) 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곳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 집착하게 되면 정신의 리듬이 불협화음으로 되려 산만해지고 브런치로 인해 어렵게 찾은 나의 자존감에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을까 저어되기도 한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브런치 또한 자회사의 확장과 그에 따르는 이익을 우선시하는 하나의 플랫폼 기업에 다름 아니므로 우리 또한 자신의 본질을 지키며 하나의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삶을 추구해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세상의 혼란을 틈 타 나는 기회주의자가 되었다.
너무 아끼고 사랑하지만 때론 상대방을 위해,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위해 그 사랑을 잠깐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