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미 Feb 09. 2023

베트남 가족 여행을 앞두고 생긴 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얻게 되는 인생의 지혜

 

 큰아들이 우리와 떨어져 자취를 시작한 건 군대를 포함해  4년도 더 된 일이다. 지난해 작은 아들까지 진학문제로 상경해버리고 나니, 주민등록 등본상에 달랑 우리 부부 둘만 얹어져  일상생활에 이어 서류상으로도 휑한 느낌이다.


 많지도 않은 가족이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조각조각 나눠지다 보니 작년만 해도 4명이 함께 얼굴을  것은  고작 2번이 다였다. 재수하는 둘째의 스케줄에 맞추느라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1년에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 올해 초, 둘째의 정시 기간이 끝나는 대로 날을 잡아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한창 홈쇼핑에서 앞다투어 판매하고 있던 베트남 다낭패키지 상품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급하게 날을 잡아 다녀온 태국이래, 실로 10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저마다 떨어져 있다 보니 여행을 가기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여행상품은 우리가 정했지만 둘째의 정시 실기 일정이 그날그날 닥쳐서 나오는 바람에 날짜를 잡기까지 근 한 달 이상의 조율 시간을 거쳐야 했다.


 작년으로 만료된 여권을 만드는 것도 각자의 주소지 구청이나 도청을 통해야 했고, 코로나가 해제되자 사람들이  저마다 목말랐해외여행에 몰리는 바람에 여권 발급 기간도 2주 이상 잡아야 했다.


 첫째는 다행히 그전에 여권을 연장 터라, 6개월이라는 기간이 남아있어서 이번 여행까지는 괜찮치 싶었다.

둘째는 실기가 1월 27일로 마무리된다기에 정시 합격발표가 있는 2월 6일 이후가 더 바쁠 경우를 대비해,  2월 4일 출발, 8일에 도착하는 스케줄에 겨우 합의했다.


  "베트남에서  합격여부를 들어야 한다고?"

 둘째가 좀 겸연쩍어했지만 등록일이 10일까지고, 혹시 모를 추가합격을 기다리려면 그 이후가 더 바빠질 것 같아 겨우 틈새를 비집고 날을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예약을 하고 아이들의 동의를 얻고 나서 급하게 여행비를 결제했는데, 여행사 담당자대화를 주고받다가 미심쩍은 점 하나를 발견했다.

 

 입출국을 할 때 통상 여권기간이 최소 6개월은 남아 있어야 다. 입국 위주로 봤을 때는 6개월이라 안심했던 큰아들 여권기간이 베트남에서 출국할 시기를 보니 이틀이 모자라는 것이 아닌가? 여행사에서 급하게 여권연장을 권유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큰애가 가족여행 일주일 전에 친구와 일본여행을 다녀오기로 미리 예약을 해놓았기에 여권을 만들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날짜에 임박해 결제를 하는 바람에 돈을 환불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베트남이 공산주의국가라 일이 꼬일 수도 있다는 여행사의 우려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우리에게, 아들대신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담당자의 말은 달리 위로가 되지 않았다.


 몇 차례 통화 후 여행사에서 전자비자인 e비자를 발급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비자를 발급하면 여권기간 3개월까진 괜찮다는 말에, 우린 튼튼한 새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곧바로 여행사에 부탁했더니 대행비는 좀 비싸서 직접 해보라고 권유했다. 남편이 비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큰애와 통화했는데 아들이 직접 해보겠다고 했다.

 

 베트남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서류형식다운받아 작성한 후, 수정을 포함해 발급까지의 모든 절차를 e메일로 주고받아야 하는 과정이었다. 다행히 남편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절차를 진행하던 아들이 수수료 송금과 함께 무사히 신청은 마쳤다는 톡을 보냈다. 발급되기까지는 일주일내외, 우린 일단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1월 말쯤이었다. 우리가 신청한 여권이 발급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신상여권에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밖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행 계획이라도 짜보자며 한껏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일본 여행 중인 큰애에게서 카톡이 왔다. 로밍을 안 해 통화는 어렵다는 아들은, 두어 번 수정해서 보낸 비자를 또다시 수정하라는 요청의 이메일이 왔다며 난감해했다.


 순간, 불안이 전염된 우리는 점심도 잊은 채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 큰애와 계속 카톡을 주고받으며 이메일 상황을 확인했다. 아들은 이번에도 오류가 나면 발급이 거절될지도 모른다며 걱정을 했다.

 얼마 후 다시 처리 중이라는 메시지가 떴고 이젠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며칠 후 비자가 발급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메일로 도착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일로 며칠 동안 혼란스러웠지만, 어떻게 여행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에 이렇게라도 상황이 마무리된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간을 살아낸 건 아니지만 세월을 겪으면서   결코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늘수록, 인생이란 '새옹지마' '호사다마'라는 옛 선현의 말씀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비중 또한 점차 커졌다.

 

지금 좋다고 끝까지 다  좋은 것도 아니며
지금 좋지 않다고 해서 나중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는 것...


 그런 진리를 온몸으로 하나씩 체득하면서 그렇게 나이가 들고, 또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비록 비싼 대가가 따르지, 조급해하는 마음도 붙잡아둘 줄 알게 되고 두려운 걱정도 다독이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를 하나씩 쌓아가는 게 나이 드는 것인가 보다.


 며칠간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기분을 경험했지만 이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인생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또 다른 혜안을 얻었으니, 우리 부부나 아들에게 거기에 든 수수료나 마음고생은 결코 비싸지 않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수업료가 아니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재수생 아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