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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Dec 28. 2022

나의 재수생 아들에게...

한 해를 보내며...아들을 생각하며...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매년 연말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번잡한 분위기 가운데 TV속 시상식 프로그램을 보며 실감하곤 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아이들도 장성해 수고로이 근처 제야의 종을 찾아 몸을 에이는 추위를 뚫고 새벽길을 나서는 일도 추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저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면 속 종소리를 들으며 때론 성가신 축제처럼, 혹은  어김없이 또 한 살 먹는다는 그저 그런 서글픔을 곱씹으며 새해를 맞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밑에  유난히 마음이 어수선해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매해 빼없이 일수 찍 듯 더해만 가는 나이야 무에 그리 대수겠는가?

 처음엔 그토록 나를 가만두지 않고 바쁘게 몰아쳤던 일이 갑자기 사라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아님, 낮이 유난히 짧아진 요즈음, 일조량이 부족해서 일거라고. 그것도 아니면 마침내 나에게도 오고야 만 갱년기 증상인가?


 어제는 도서관에서 소설 종류로만 한가득 빌려왔다. 무언가 집중할 거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며칠 전부터 두서없이 손이 가는 대로 쓰기 시작했던 소설 나부랭이도 그런 목적이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현실을 떠나 무언가를 상상하는 과정은 그만큼 집중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요 며칠, 심술을 부리던 강추위가  잠깐 잦아든 틈을 타 남편은 부쩍 우울해하는 나에게 오랜만에 근처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다녀온 밀양, 딱히 무슨 연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 집과 가까운 지역의 관광지를 둘러보던 중 한 시간남짓의 거리에 구경할 거리가 많아 인상 깊었던 곳이었다. 그런 와중에 게으름을 피우더라도 매일 빠지지 않고 하는 만보 걷기 앱에서 마치 밀양 아리랑길 걷기 이벤트가 있어 겸사겸사 찾은 곳이었다.

 

 우린 제법 외곽에  있는 유명맛집을 찾아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밀양 아리랑길 1코스 중 일부인 둘레길의 출발지에 섰다. 그리고 작정한 듯 걷기 시작했다. 밀양강 오리배 선착장에서 시작해 6~7 km의 길을 걸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햇빛을 받으며 육체라도 움직여 주지 않으면 실내의 낮은 산소 농도에 시들어 가는 물처럼 그렇게 서서히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낯선 곳에서  그날따라 태양이 선심 쓰듯 뿌려대는 강렬한 비타민D를 뼛속 깊이 흡수하며  걷던 나는 이 참담한 기분의 정체를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끝에는 아들이 있었다. 멀리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혼자  고스란히 삭이고 있을, 12월로 성인이  둘째 아들이...


 수시 합격자의 등록이 끝나는 20일부터 추가 예비 순번을

받은 이들 또한 합격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시에서 여러 곳에 합격했거나 가고 싶은 곳에 추가합격되면서 생긴 빈자리를 예비추가 합격자로 우고 있었다. 재수 중인 둘째가 지원해 예비 12번을 받은 학교도 첫날부터 몇 명씩 빠져서 우린 서로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저마다 품어선 안될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추가합격등록이 끝나는 28일까지 근 일주일간의 희망고문이라는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3일 연속으로 빠지던 대기가 아들 바로 앞에서 멈춘 지  며칠째, 설마 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들의 입시에 항상 쿨한 태도를 견지한 나였는데...

그것 또한 오만이며 자기기만이었다는 걸  지금 치르고 있는 형벌로 깨달을 수 있었다.


 며칠째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연락을 하지 않고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는데  마감일을 앞둔 오늘 늦은 시간, 뜬금없는 아들의 카톡이 왔다. 오랜만에 친구랑 해먹은 요리가 아주 맛있었다는... 빌미가 생기자  기다렸다는 듯 우린 시간 따윈 괘념치 않고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그리고 녀석이 만든 요리에 대해, 집밥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다가 조심스럽게 내가 먼저 아킬레스 건을 건드렸다.


  "별... 일... 없지?"


 "내일까지 기다려 봐야지..."


신경 쓰지 말고 정시에 집중하라고... 더 좋은 데 가면 되지...

이도저도 아니면 군대 가면 되고 ㅎㅎ...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애써 쾌활한 목소리로 과장되게 톤을 높이며 웃었다.


 "미안해서...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아들은 정시를 준비하게 되면 더 들어갈 학원비와 원서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득한 아들의 목소리에  침묵이 흐른 것도 잠시, 


 "괜찮아, 기껏해야 한 달인데 뭘. 그동안 많이 써서 그건 유도 아니야."


 "그래, 엄마 아빠 그 정도 능력은 되니까 걱정 말고 정시에나 신경 써."

평소에는 그렇게나 싫던 남편의 허풍도 한몫했다.


 "어쩜 나 내일 울지도..."

아들의 목소리에서 이미 물기가 묻은 미세한 떨림이 전해왔다.


 "그럼 내일 전화하지 말까?"


 "보고..."

우린 애써 웃으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통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금 숨쉬기가 편해짐을 느꼈다. 표면상의 이유겠지만 그게 돈문제라면 다행이다 싶었다. 녀석을 힘들게 하는 게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암담함과 자신의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감이  아니라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어쩌면 아직 여리고 표현력이 부족한 녀석의 소치일지라도 그렇게 얘기해줘서 난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른다.


 우린 짧은 생애동안 경험을 통해 익히 학습해 왔다. 항상 현재가 제일 힘들고 괴롭지만 이 또한 지나가서 먼 훗날 웃으며 얘기하리란 걸...

정도의 차이야 존재하겠지만 아픔과 고통 없는 삶이 그 어디 있겠는가? 어떡하든 견디고 살아남아서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승자가 아니었던가?


 지금 겪는 아픔과 고통이  너를 강하고 지혜롭게 하리란 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아들에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지금 녀석은 온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며 오롯이 혼자서 그 과정을 견디는 중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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