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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Nov 27. 2022

수능을 마치고 귀환한 아들

둘째의 집 방문기

 수능을 마친 둘째 아들이 잠시 집에 내려왔다.

밖으로 나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연고 없는 서울에서

딱히 할 일도 없이 좁은 원룸 방구석에서 혼자 뒹굴거리는 모습이 딱해 한 번 내려오라고 애길 해도 요지부동이던 녀석이, 옛 친구들과 약속이 잡혔다며 지난주에 집에 왔다.

아니, 들렀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목요일 저녁쯤 도착해 월드컵 1차전을 같이 보고, 다음날  늦잠 자는 녀석을 기다렸다가 겨우 눈곱을 뗀 녀석과 점심이 다 되어서야 늦은 아침을 함께 한 것만  빼고는 녀석은 자기 방에 콕 박혔다.

마치 시간을 몇 년 전으로 되돌린 듯, 얼핏 보면 녀석과 나 사이엔 딱히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로 간에 흐르는 공기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뭔가 좀 루즈한 분위기? 뾰족하기만 했던 과거에 비해 둘 다 확실히 평온해져 있었다. 부모의 질문에 한 번씩 답하는 녀석의 목소리에선 약간의 비음이 섞인 능글거림마저 느껴졌다.

다행이다 싶었다. 너무 처지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과하지도 않은, 나름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본기를 다지 거라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대부분 수능 이후 최종 합격 발표가 나는 에 비해, 수시의 당락이 한 발 앞선 예체능을 지원한 녀석은, 수시에서 대부분  떨어지고 추가합격 대기번호를 받은 한 곳만을 남겨둔 채 수능을 봐야 했다. 일찌감치  한 곳이라도 붙었으면 수능을 보지 않고 마음고생도 덜 했을 텐데... 12월 말쯤 추가합격 발표가 나는 한 곳만 바라보며 넋 놓고 있을  없어, 피치 못할 경우를 대비해 정시를 염두에 두고 수능을 보았다.


 심각한 걸 꺼리는 분위기라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남과는 다른 길을 후회한 적은 없었냐고, 알바로 전전하더라도 네가 좋아하는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장난기를 섞어 극화시켰다.

친구들이 폼나는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아도 넌 후회 없겠냐고... 네 꿈이 너무 늦어져서 삶이 구차해져도 계속 네 길을 고집하겠냐고...

방심하고 있던 아들이 미끼를 물었다.

수시에서 자꾸 떨어질 때 잠깐 생각했다고... 그냥 일반 전공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정말? 이때껏  엄마 아빠가 출혈을 감수하며 밀어줬는데 그렇게 쉽게?

엄마의 다소 과장된 반응에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방금 뱉은 말을 부정하는 비겁한 녀석...

아니라며... 끝까해볼 거라고...

나는 다소 장난기를 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빠는 네가 만족할 수 있다면, 네가 견뎌낼 수만 있다면 너의 꿈과 열정을 지지한다고.

설사 중도에 지쳐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이 과정이 너의 삶에 녹아들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너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거라며...한 살이라도 젊을 때 네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보라고. 긴 인생에서 1,2년쯤은 너의 꿈에 투자해도 괜찮다고. 

아직 어린데... 너무 눈부시게 젊은데.. 벌써부터  경제적인 것에 저당 잡히는 삶을 시작한다는 건 너무 씁쓸하지 않냐고...

하지만 마지막 말은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채, 이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지극히 감상적인, 편견이 섞인 나의 좁은 식견일 뿐...


 집에 머문 3박 4일 동안 연이어 친구들을 만나느라 시종일관 들락날락이더니 좀 더 쉬었다 가라는 부모의 말에도 빠른 고속버스를 예매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음 주엔 정시 실기를 위해 학원에도 가야 하고... 여하튼 바쁘다고..

금요일에 이어 토요일에도 친구들을 만난다고 나갔다 들어오더니 오랜만에 친구들과 회포도 풀 겸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다고 주섬주섬 세면도구를 챙기던 녀석은 일요일 일찍 예매했던 기차표를 오후로 바꿀 거라고 말하고 다시 집을 나섰다.


 남편과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서 장을 봤다.

아들이 좋아하는 육회도 사고,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고 만류하는 반찬도 몇 가지 쌌다.

아들은 이제 서울에 있는 코딱지만 한 원룸이 제 집인가 싶나 보다. 누구든 밖에 머물면 집이 그리워지듯 이제 제 집이 편한가 보다.

서서히 부모로부터 독립을 준비하는 녀석, 그 과정이 힘겹지 않고, 안쓰럽지 않고, 씩씩해서 오히려 다행이다.


그러나 저러나 육회를 먹고 갈 시간은 있으려나?

일요일 오후, 아들이 타고 갈 버스 시간은 다가오는데 녀석은 아직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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