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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r 05. 2023

우리의 역사인식은 안녕하신가요?

뒤늦게 삼일절을 보내며...


  3•1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3월 1일은 그저 한 해의 모든 일이 시작되는 다음날인, 3월 2일을 위해 달콤한 휴식을 주는 공휴일 이외의 의미는 없는 듯 여겨졌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둘 다 백수 생활 중이고 입학, 개학등으로 바쁜 자녀도 없는 터라 휴일이 따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몸이 빨간 날을 인식한 탓인지 평일보다 느지막이 일어나 어정거리며 근처 5일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소일하며 보냈다.

 저녁 늦게 TV를 틀고서야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태극기의 물결로 인해 올해가 104주년 된 삼일절임을 실감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뭔가 양심에 어긋난 짓을 한 것처럼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잠깐.


 TV에선 그날 있었던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로 연일 떠들썩했다.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을 두고, 대통령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새로운 미래의 파트너가 된 일본과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고도 했다.


 정치에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과거에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내 삶까지 짓밟은 이가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찾아와서 사과는커녕 과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다시 잘 지내보자고 한다면 난 선뜻 그러마하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국가에 의해 집단적이고 계획적으로 유린당한 일이사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 당시 힘없고 무능력한 정부 하라서 국민이 억울한 고초를 겪었다면, 지금에 와서라도 더 발 벗고 나서서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장서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삼일절 다음 날은 한 장의 사진이 불러일으킨 또 다른 해프닝으로 온라인이 달아올랐다.

 

 삼일절 당일 자기 아파트에 버젓이 휘날리고 있는 일장기를 보고 화가 나서 올린 사진 한 장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대한민국은 때아닌 일장기 논란 한층 뜨거워졌다.

  경 쓰지 않아도 절로 눈이 가는 시뻘건 일장기를... 그것도 삼일절에... 무슨 시위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주변 사람들의 항의에, 아파트 측에서 내려달라고 연락을 해도 답이 없자, 아파트 주민 몇몇이 항의하러 찾아갔다고 한다. 한참만에 응답을 한 30대 부부로 보이는 장본인들의 반응 또한 분노를 증폭시켰다. 한국이 싫어서 그랬다는 어이없는 대답과 함께  뜻밖의 소란에 경찰이 출동하자 "일장기 건 게 대한민국 법에서 문제가 되느냐"라고 따졌고 차후 Jtbc와의 인터뷰에서는  "(윤 대통령이 삼일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협력관계에 있는 국가라는 점을 밝혔고, 그 부분에 대해 옹호의 입장을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혼란스러웠다. 워낙 다양한 가치가 만연한 시대라 굳이 어느 한 쪽이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웬일인지 다가치 시대에 어울릴만한 다양한 토론이나 의견개진은 차단당하고 오히려 입을 굳게 다물게 된다. 어쭙자니 의견이랍시고  입밖에 냈다가 자칫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폄하당하거나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토론을 통한 합의과정은 사라진 채 귀를 막고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거나 남 탓만 하는 극단주의만 난무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자신들을 찾아와 항의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자신들은 남들보다 돈도 더 잘 벌고 세금도 더 많이 낸다고... 심지어 일본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말도 했다고도 한다. 설사 이번 사건의 반 이상이 과장되거나 부풀려졌다 하더라도 우린 그들을 통해서라도 사회구성원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나 , 역사인식대해 스스로 심각하게 점검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대해 어떤 관점을 견지해야 할까?

서양사를 으면서 나의 가슴을 심하게 질타했던 어느 학자의 글이 생각났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역사를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기록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연 역사란 과거사에 대한 기록일 뿐인가? 역사는 한 집단 내지 국가의 구성원들이 겪었던 사건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한 사건들의 원인에 대한 탐구를 의미한다.

                                    •••중략•••

 우리가 과거에서 깨달은 진리를 현재에 부딪친 문제들을 해결함에 적용하고 미래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탐구를 통해 미래의 행동 지침을 얻는 일은 구도자적 고행과 같이 어려운 작업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겪은 사건들에 대하여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망각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집단적 기억을 정확히 보전하고 평가함을 통해 미래의 행동 철학을 찾는 일은 그러한 망각적 본능을 이겨 내려는 이성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흔히 제2차 세계 대전의 주범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과거사 반성에 대하여 보여 주는 극단적으로 대립된 태도를 보며, 그 태도의 차이가 단순히 두 나라의 민족성 또는 역사의식의 차이 때문이라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과연 독일인은 일본인보다 더 반성을 잘하고, 역사의식에 투철한

사람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독일인들이 그렇게 과거사에 대해 반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치 전범들을 지구 끝까지 추적하여 법정에 세운 이스라엘 인들의 노력, 즉 과거의 기억을 현재화시키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일본인들이 과거에 저지른 대한 제국 침략사를 미화시키고 역사 자체마저도 왜곡시키고자(위안부 제도에 대한 부정, 독도영토권을 둘러싼 교과서 개정 등) 광분하게 됨의 일차적 책임은 일본인들 자신에 있다기보다, 피해자인 우리 자신이 그들의 그러한 만행에 대한 기억을 현재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나태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삼일절을 보내고 난 후 뒤늦게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며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기억을 현재화시키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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