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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r 06. 2023

유럽(Europe)은 Europe(에우로페)에서 왔다?

크레타 문명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 - 번외 편


 지금으로부터 4000년도 더 된 크레타 문명은 역사적 기록보다 신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더 많다. 분량상 이전 글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크레타 문명에 관한 재미있는  신화를 몇 가지 더 소개하고자 한다.


렘브란트 <에우로페의 납치>

 앞서 언급한, 흰 소로 변한 제우스에게 납치되어 크레타로 건너가 미노스왕을 낳은 에우로페는 페니키아의 공주였다.

페니키아는 알파벳의 기원이 된 페니키아 문자로 유명한데 지금의 레바논지역에서 발흥한 고대 무역도시였다.


BC 6세기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판도


 그들은 점차 세력을 뻗쳐 기원전 6세기경에는 지중해를 아우르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는데,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이 태어난 카르타고 역시 페니키아의 식민도시였다. 페니키아의 공주가 크레타섬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크레타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더불어 유럽 전역에 끼친  페니키아의 영향력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다름 아닌 유럽(Europe)이라는 명칭이 에우로페 (Europe)에서 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미노스왕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미궁, 라비린토스를 만든 당시 최고의 건축가인 다이달로스가 있다. 다이달로스는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미노스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에게 알려줌으로써 미노스왕의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그의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라비린토스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피테르 파울 루벤스 <이카루스의 추락>

 탈출을 고심하던 중, 새의 날개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여서 인공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루스와 공중 탈출 작전을 펼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랍의 특성상 너무 높게도, 낮게도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잔뜩 흥분한 이카루스는, 태양 가까이 날다가 밀랍이 녹는 바람에 그만 추락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흔히 인간의 끝없는 동경이나 욕망을 지칭할 때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마지막으로 본의 아니게 힘을 합쳐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뒷이야기는 어떨까?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테세우스를 도운 아라아드네는 그리스 귀국 중 결국 낙소스 섬에 버려지게 된다.


티치아노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왼쪽 하늘끝에 왕관자리가 보인다.

 다행히 아리아드네는 한없이 슬퍼하는 그녀에게 반한 디오니소스와 결혼하게 된다. 로마식으로는 바쿠스라고도 불리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결혼 선물로 7개의 보석이 박힌 왕관을 선물하는데 그녀가 죽은 후 왕관을 하늘에 던져 별자리(왕관자리)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테세우스는 크레타 섬으로 출발하기 전 아버지인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와 약속이 있었다. 떠날 때 검은 돛을 달았던 배에,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르고 돌아올 때는 흰 돛으로 바꿔 달고 오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매일 바닷가 절벽에 나가 아들이 무사하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는 테세우스가 깜박하고 바꿔 달지 못한 검은 돛을 보고는 그만 바다에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바다를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의 에게해로 불렀다고 한다.


 문자가 없던, 있었더라도 해독되지 않은 먼 옛날이야기는 오랜 기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덧붙여지기도 하고 과장, 미화되기도 하면서 이렇게 신화나 전설, 설화형태로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와닿았다. 진위 여부를 떠나, 보는 이에 따라  아름다운 이야기로, 때론 무시무시한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포장한 불온한 이념서로 치부되기도 한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로 상징되는 여신숭배사상을 철저히 파괴하고 남성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를 이식한 침략자로 해석되기 전, 우린 뭔가 말하지 못할 사연을 가진 비운의 로맨스 스토리의 주인공으로서 매력을 느끼며 신화를 더 파고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차후 지식이 쌓일수록 다양한 해석에 또 다른 재미를 느끼지만, 처음 신화를 접했을 때의 그 신비함과  안갯속을 헤매는 듯 뭔가 이중적이며 애매모호한, 읽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의 문이 열려있는, 그 무한한 개방성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신화의 강렬한 매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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