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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r 24. 2023

무인가게 전성시대

소통이 두려운 시대...

 

 남편과 매일 만보 걷기를 하다 보면 평상시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의 변화가 한 번씩 눈길을 사로잡는 때가 있다.


 잎이 모두 떨어져 나가 겨우내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메마르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생명이 움틀 여지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곳에서도 조금씩 그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기특한 새순들이 요즈음 우리의 시선을 가로채는 주범들다.

 들쑥날쑥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미 만개한 꽃봉오리로 봄의 전령사 노릇을 자처하는 목련이며 매화, 동백 등은  어떤가? 하지만 야속하게도 무에 그리 급한 지 소리 소문 없이 꽃잎을 틔우던 녀석들은 집중되는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서둘러 지천에  잎들을 떨어뜨리는 모습이 보는 이를 난감케 하기도 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비단 자연뿐만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많은 가게들... 새로 오픈 준비를 하는 상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한 번 가봐야지 하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소위 오픈빨이라는 기간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짧아진 데다가 말 그대로 개업 프리미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업을 하는 곳도 더러 눈에 띄었다.

 동네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나름 촉이 생겼는지 곧 문을 닫을 것 같은 게들이 종종 눈에 들어오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셋 중 하나 꼴로 다음 주자에 바통터치를 하느라 말 그대로 공사가 망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 동네엔 매일 폐업하는 집도 있다.

오래된 속옷가게인데 요 며칠 전에도 폐업정리 현수막을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채 가게 밖으로 온갖 물건을 내어놓으며 폐업정리 세일에 들어갔다.

처음엔 이게 웬 횡재냐며 몇몇 미끼상품에 홀려 며칠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예기치 않은 폐업정리의 흥행으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은 건지, 그 가게는 여전히 건재하며 폐업도 일종의 마케팅 기법으로 쓰일 수 있음을 10년째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요즘 부쩍 눈에 띄는 현상들 중 하나는 무인 가게들이 고 있다는 점이다.

무인 카페야  기계치인 나도 몇 번 사용해 봤을 정도로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터이지만 한창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밀키트와 문구점, 세탁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무인 꽃가게도 두세 군데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뉴스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끝나자 대학가의 상가들은 하나둘씩 줄폐업을 하고 휑해진 그 자리를 채운 건 다름 아닌 무인 상점들이었다고 한다.

 몇 년간의  세계위기에 나락까지 떨어지면서도 코로나 종식과 함께 어쩌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기회를 꿈꾸며 가까스로 버텼을지도 모를 상인들... 하지만 그 사이 코로나는 너무도 많은 을 바꿔놓았다.

 어차피 올 미래를 앞당겼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기존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뿌리까지 확 바뀐  생태계를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이리저리 늘어나는 무인가게를 눈으로 직접 목도하며  자신은 그런 미래를 미리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그런 사업만이 살아남을 거라고 너스레를 떠는 남편을 보며 난 왠지 마음이 씁쓸했다. 무인가게에 정이가지 않는 나는 남편의 핀잔대로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과의 대면접촉이 불편해서 직접적인 통화보다 문자가 더 편하다는 소위 MZ세대들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만큼 무인가게를 더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살아온 환경 탓인지 난 기계와의 거래에 영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치솟는 인건비와 대면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번잡한 일들을 겪지 않는 면에서라도 나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무인이 대세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첨단기술을 겸비한 무인시대...

그 말에서 휘황찬란한 미래사회가 그려지기보다 왠지 찐한 외로움의 냄새가 나는 것 일까?

모든 가게가 항상 상냥하고 미소 띤 얼굴로 손님을 대하는 건 아니지만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온기마저 사라진 채 기계 앞에서 그저 입은 꼭 다문 채 눈으로 읽고 손으로 터치하는 것만으로 다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자꾸만 인간의 소외감과 단절감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른다.


점점 소통이 힘들고 어려워지는 세상... 좀 더 원만한 소통방법을 찾기도 전에 효율과 편리성이라는 미명하에 자꾸 편한 쪽으로만 치닫는 이른바 '발전'이라는 슬로건이 썩 내키지 않는 이유이다.


 문득문득 자신이 느끼는 공허함의 실체를 인지하지 못할 뿐, 사람은 태생적으로 누구나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때론 부딪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어울리며 함께하는데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는 우리 세대에겐 무인이란, 말 그대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 빠진, 합리성만 이식된 차가운 기계와 대면해야 하는 디스토피아로만 그려지는  나만의 노파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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