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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Apr 10. 2023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

변화된 환경 속 청년의 미래

 

 며칠 전 이웃에 사는 지인에게서 화가 왔다.

가끔씩 만나 동네 근처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하는, 오래 알고 지내는 또래 친구 중  명이.

크게 신경 쓸 일 없는 평범한 중산층인 그녀에게 최근 들어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는데, 다름 아닌 자식문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아들이 간호학과를 나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취직했다는 소식에 함께 기쁨을 나누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달이 났단다.

 아들이 입사한 날부터 힘들다며 하소연을 늘어놓더니 급기야 채 2달도 채우지 못하고 덜컥 사표를 낸 것이다. 한동안 속앓이를 했을 그녀가 아들을 이해하려고 마음을 다스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렇게 병원을 그만두고 부모랑 척을 지다시피 을 나가더니 몇 달 동안 공장에서 일하면서 제법 거금을 모았는지 이번엔 호주행을 택했단다. 그곳에서 돈을 벌며 현지 간호사 자격증  따는 것을 목표로 녀석이 모든 걸 알아보고 스스로 결행한 일이었다.

 그는 영어공부를 위해 오래전부터 온오프라인 연결망을 통해 여러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얻은 영어실력과 인맥이 이런 결정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지인의 말로는, 아들의 다국적 친구들은 서로의 나라를 방문할 때면 가능한 한 시간을 조율하여 하루나 이틀 정도 친구들의 현지 가이드 역할을 자처한다는데 며칠 후에 아들의 스위스 여사친이 창원을 방문한다 사실을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한다.

 이제야 모자 사이가 제법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호전되는가 싶던 찰나에 아들은 하루 정도 자신의 외국인 여사친의 가이드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며 전화상으로 나에게 또 다른 걱정을 토로했다. 아들은 친구가 자기 때문에 창원을 방문하는데 정작 자신은 호주에 와있고... 여차하면 아들이 빠른 비행기 편으로 한국에 들어올 태세라 마지못해 엄마가 해보겠다며 아들을 만류했는데 막상 혼자 가려니 엄두가 안 난다며 나에게 함께 가줄 수 있냐고 속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마침 커피수업을 마친 시간이라 나는 기꺼이 그녀와의 동행을 허락했다.


 스위스 태생의 '사미라'란 이름의 아가씨를 태우러 가는 동안 우리 아줌마 둘은 오랜만에 맞딱뜨린 낯선 경험에 다소의 설렘과 긴장감으로 한층 상기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녀가 한국어를 조금 알아듣고 몇 마디라도 할 줄 안다기에 짧은 영어실력과 바디랭귀지를 활용하면 못할 것도 없다며 우린 서로를 격려하기에 바빴다. 

 큰 키에 자그마한 얼굴과 선한 인상... 왠지 처음 본 순간부터 정이 가는 그녀를 태우고 우린 지인의 아들이 미리 짜 준 코스대로 귀산의 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벚꽃은 거의 다 떨어졌지만 화창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우린 그녀의 동의구한 뒤 잠깐 주변을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아들이 직접 지정해 준 카페로 향했지만 마침 공사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물색했다. 지인은 곧 절벽 위에 위치해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근처 유명 카페로 안내했고 우린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배경삼아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우린 크게 괘념치 않고 천천히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여동생과 남동생 둘이 있다는 맏이 사미라는 올해 26살의 간호사였다. 8개월 정도 스위스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무작정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단다. 스위스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어릴 때부터 인근 국가 여행을 많이 갔는 비싼 물가를 고려해 주로 가족들과 캠핑 형식으로 다녔다고 한다.

 여행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그저 사람 만나는 것이 좋다는 그녀는, 여행한 나라 중 가장 좋은 곳은 어디냐는 아줌마들의 식상한 우문에 미소 띤 얼굴로 한국이라며 센스 있는 기도 했다.


 얼마 전 태어난 조카 사진을 보여주며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은 영락없는 조카 바보인 다정다감한 이모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남동생이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다며 종종 부모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고 씁쓸한 기색을 표하던 그녀는 자신 또한 스위스에서 간호학을 더 공부할 거라는 당찬 포부를 밣히기도 했다.


 아직도 아들을 걱정하는 지인에게 한 마디 해주라는 나의 부탁에 그녀는 전혀 문제없다고 잘해나갈 거라며 따뜻하지만 신에 찬 위로를 했다. 다행히 지인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들 또래인 라의 삶을 엿봄으로써 많은 위안을 은 것 같았다.


 세상은... 젊은이들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또 자기 방식대로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우리 시대에나 통했던 정답지로는 그들을 설득하고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나 선진국이라 일컫는 곳이나 젊은이들이 처한 경제적인 상황들은 훨씬 어려워졌지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부딪히며 치열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고, 우리 눈에 다소 무모해 보인다고 막아설 명분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는 주어진 보기 네댓 개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객관식 인생이었다면 그들에게 인생이란, 주관식을 넘어, 주어것이라곤 제목 외에 온전히 하얀 여백뿐인 서술형, 논술형 인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인지한다고 했던가? 그들은 이미 좁디좁은 우리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인생이라는 문제지의 여백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더 넓은 곳에서 더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보다 한국을, 한국의 문화를 더 사랑하게 되었을 지도 모를 이방인 사미라가 말아준 소맥을 곁들인 저녁은 왠지 그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을 희망과 도전으로 탈바꿈시켜놓은 글로벌한 마법의 식탁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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