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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y 13. 2023

나의 첫 독서모임

독서모임을 통해 사람을 보다

그녀를 알게 된 건 10년도 더 된 일이다.

한창 학원운영으로 바쁜 시기, 그녀는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학원 프랜차이즈의 직원으로, 국장이란 직함을 달고 원장들 앞에 나타났다. 

 

 프랜차이즈를 하다 보면,  가맹점들이 본사나 지사와 이해가 상충되거나, 서로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일들이 생겨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녀는 그 사이를 무심한 척  비집고 들어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문제를 풀어가곤 했다. 그러한 그녀의  방식이 원장들에게는 진솔하게 소통하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와닿았는지, 그녀는 냉랭하던 분위기를 어느새 부드럽게 반전시키는 완충재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 또한, 많은 이들을 우군으로 만드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는데, 그런 저런 이유로 나와도 잘 맞았는지, 우린 그 프랜차이즈를 떠났어도 잊힐만하면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몇 년 전, 밀양으로 터전을 옮겨 전원주택을 꾸리면서 여전히 또 다른 교육업계에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올 초 연락이 왔다.

독서 모임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며 이렇게라도 환경을 만들어 자신을 밀어 넣어야 그나마 읽지 않겠냐며, 그 핑계로 얼굴도 보고... 나야 항상 그런 모임을 꿈꾸고 있던 터라 기다렸다는 듯 두말 않고 승낙했다.

 

 그렇게 모종의 합의가 있은 지 2~3달 후, 각자 연초에 잡혀있던 계획들이 마무리되던 4월, 밀양에 있는 그녀의 그림 같은 전원주택에서 준비모임을 가졌고, 5월 둘째 주 수요일, 창원과 밀양의 가운데 지점인 진영의 한 커피숍에서 첫 독서모임을 가졌다.

 당발의 위력을 과시하 듯 그녀를 통해 알음알음 모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 6명이었다. 저마다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녀의 기운을 받아선지 모두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 첫 도서는 개리 비숍의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이었다. 돌아가면서 책을 선정하기로 한 룰에 따라 준비모임 때 첫 순서인 그녀가 추천한 책이었다.

학원을 운영할 때 나약한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읽었던 성공 서적이며, 자기 계발서들... 업을 접으면서  그런 류의 책들과 이별한 지도 어언 5년, 나의 상황이 바뀌어서 인지 반복되는 주제에 더 이상 흥미를 잃어서인지 간단한 내용에, 얇은 두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잘 가지 않아 읽기까지 애를 좀 먹었다. 

 시험기간, 평소 읽지도 않던 소설류들에 무한 애정이 발동했던 그 때 처럼, 자꾸 구미가 당기던 다른 책들과의 외도 탓에 거의 모임에 임박해서야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돌아가면서 자신이 읽은 부분들을 짧게 요약한 후 순서에 구애 없이 저마다의 생각들을 나누었다. 이번 모임을 계기로 오랜만에 책을 읽게 되었다는 분들도 몇 분 계셨는데 몇 십 년 만에  도서관 회원카드도 만들었다며 자랑하는 모습은 학생마냥 귀엽기까지 했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직면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모임의 룰기본적인 진행과정 외에 특정한 규칙이나 목표를 정하지 않았음에도, 읽은 책의 내용들을 나의 생활과 삶 속으로 끌고 들어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거며, 또 어떻게 적용할지,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지 저마다의 해결책을 도출해 내는 모습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독서모임이란, 책을 전문적으로 다루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아니라면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좀 더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처음 대면할 때, 직접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묻기도 조심스러울뿐더러 막상 어디서, 어떻게 얘기를 풀어가고, 어디까지 접근해야 할지 막막할 때, 독서모임은 아주 적당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실 누군가와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을 오래 두고 보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책이란, 구태여 의도하지 않고도,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는 또한, 그 모임에 제법 그럴듯한 명분과 나름의 품위를 덤으로 얹어주기도 한다. 그러한 명분이라도 없으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과 제한적인 사고로 이루어진 자신의 빈약한 밑천이 바닥나는 날, 더 이상 만남의 이유를 찾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독서만이 그 모임을 무한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마법의 열쇠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나 자신과 멤버들을 볼 수 있도록 나름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도, 책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이도, 또 자기 취향의 독서만을 고집하는 이도, 모두 흔쾌히 독서모임에 응했던 건, 어쩌면  중심에 책이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첫 발을 뗀 오늘, 그 소기의 목적달성한 것 같다. 토론에서 드러난 각자의 생각들을 통해 왠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이 조금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책을 나누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상대방에게 한 발 짝씩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더  보였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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