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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r 26. 2023

[일리아스], 그 뒷이야기

트로이 에필로그(1)


[일리아스]는 10년 동안 이어졌던 트로이 전쟁 중 약 50일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정작  책에서는 전쟁의 앞뒤 이야기는 알 수가 없다. 전쟁의 원인은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생략하고 이번 글에서는 [일리아드]에 기록된 내용 이후의 사건들 중 흥미로운 부분만을 추려 에필로그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킬레우스의 죽음

헥토르의 죽음; 헥토르의 시체를 끌고가는 아킬레우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첫눈에 반한 트로이의 공주 폴릭세네와 만나기 위해 아폴론 신전을 방문했다가 숨어있던 트로이의 자객에 의해 사망했다는 설과 여러 번의 교전 중 혹은 교전 후, 트로이성 근처에서 파리스의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설 등, 완전히 다른 이야기에서부터 부분적으로 각색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하지만 그 어디서나 공통된 요소가  가지 있는데, 바로  파리스가 쏜 독화살을 아폴론 신이 도와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에 정확히 명중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는 평범하게 살면서 장수를 누리거나 짧은 생을 살되 온 세상에 길이길이 회자되는 영웅으로 남을지, 두 가지 삶의 형태를 제시한 신의 뜻이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그와 더불어 자신이 죽이고 그 시신까지 욕보였던 헥토르가 남긴 마지막 예언이 맞아떨어졌음을 절감하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짧지만 위대한 영웅으로서의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이제야 그대를 제대로 알 것 같군. 그대의 운명도, 또한 그대를 쓰러뜨릴 자는 역시 내가 아니었던 것도 말이야. 그대의 가슴 안에 있는 마음은 진정 강철, 그 자체군.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신들이 그대에게 분노를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아무리 용감하더라도 그날, 스카에안 성문에서 아폴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너를 죽일 것이다.



필록테테스의 화살

렘노스섬에 버려진 필록테테스

 아킬레우스의 죽음 이후 너무나 많은 영웅들의 희생으로 절망에 빠진 그리스 진영은 점쟁이 칼카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렘노스 섬으로 가서 필록테테스를 불러오십시오. 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필록테테스 없이는 트로이아 성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10 년 전 트로이로 향해 가던 그리스 선단은 물을 싣기 위해 렘노스 섬에 상륙했는 당시 그리스군단에 속해있던 필록테테스는 그 섬에 살고 있던 독을 뿜는 용과 싸우게 되었다. 싸움 와중에 용에게 발을 물린 그는 독물이 뚝뚝 떨어지상처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지르는 큰 비명 때문에 배에 합류하지 못하고 그냥 섬에 남겨지게 다.


 10년 후 다시 찾은 렘노스섬에서 그는 활과 화살로 새를 잡아먹으며 겨우 연명하는 신세였다. 그가 유일하게 지니고 있었던 활과 화살은 바로 전설적 영웅인 헤라클레스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사연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계략에 빠져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 때문에 온몸의 살점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받게 된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두려운 나머지 어느 누구도 장작더미에 불을 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필록테테스 (혹은 그의 아버지 포이아스)가 불을 붙여 그를 화장시켰고 헤라클레스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에게 히드라의 독이 묻은 자신의 활과 화살을 선물했다.


 그를 다시 찾은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의 설득으로 트로이에 온 필록테테스는 독이 묻은 화살로 파리스를 죽임으로써 트로이를 함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파리스의 죽음

파리스와 오이노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비가 파리스를 낳았을 때 횃불이 트로이를 불태우는 꿈을 꾸자 그가 트로이를 망하게 할 거라는 신탁을 듣고 산에 버려 죽게 한다. 하지만 타고난 운명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인지 그는 양치기에게 구출되어 이다산의 목동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왕자의 신분이 혀지고 자식을 그리워하던 왕내외가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신분을 되찾게 된다.

 

 파리스는 사과 한 알로 시작된 신들의 장난에 휘말리기전 이다산에서 요정 오이노네와 함께 아들을 낳고 알콩달콩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헬레네와 바람이 난 후 조강지처를 헌신짝 버리듯 외면한 그는 트로이 전장에서 필록테테스의 화살을 맞고 독이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을 겪고서야 치유의 능력을 지닌 옛사랑 오이노네를 찾아간다. 사랑과 배신감에 치를 떨던 오이노네는 자신을 찾아와 도움을 구하는 파리스를 냉정하게 대하고 외면하지만 곧 마음을 돌려 그를 찾았을 땐 파리스는 이미 주검이 되어 고향 트로이에서 화장되고 있었다. 파리스를 너무나 사랑했던 오이노네는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에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말 그대로 온몸으로 그와의 마지막 사랑을 불태웠다.


[일리아스]에서 묘사되 파리스는 온통 부정적인 모습 일색이다. 유부녀와 바람이 난 파렴치한이며 자신으로 인한 전쟁에서도 화려한 몸치장으로 외모를 돋보이는데만 신경 쓸 뿐 줄곧 뒤로 물러서는 겁쟁이에다 결국은 나라까지 말아먹은 매국노의 이미지까지 덧씌워진다.


 반면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아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마침내 로마의 건국신화로 자리매김한 [아이네이스]에서 언급한 파리스의 모습은 좀 다르다. 평소의 그의 용맹한 모습과 함께 트로이 전쟁에서도 몇몇 훌륭한 장군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는 공을 추켜 세우기도 다.


 "아폴로 신의 도움을 얻어, 그리스 영웅들 중 가장 강력하고 트로이에 재앙을 가져다준 아킬레우스를 쓰러트린 자"


그리스 지역의 영웅을 중심으로 쓰인 [일리아스]에서의 파리스와는 확실히 다른 평가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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