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잡힌 일정이었다.
동행한 이들도 만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서로를 미처 속속들이 알기도 전에 결행한 여행이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모하다 못해 피식 웃음이 나는, 그런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번에 함께 일본을 다녀온 우리 다섯은, 학원에서 커피 2급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젊은 사람보다 5,60대 또래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커피수업에서, 한국 아줌마들의 예의 그 탁월한 붙임성으로 젊은이들 몇몇을 제외하고 우린 금방 친해졌다.
그동안 학원 종사자들과의 만남만 이어오던 나는, 그 당시 왠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도 교류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었다. 낯선 이들에 대한 이런 호기심으로, 나 또한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호응했었고,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수업을 서로 하하 호호 거리며 즐겁게 보내려고 애쓴 것 역시, 서로를 급속히 묶어주는데 한 몫했던 것 같다.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오전의 대부분을 함께하다 보니 막상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자 모두들 아쉬워했다. 대부분의 모임이 그렇듯,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단톡방을 만들었고 종강 이후 몇 번을 더 만나면서 우린 마치 오랜 기간을 알아왔던 사이처럼 서로에게 편해지고 익숙해졌다.
사실, 여행얘기가 나온 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졌던 티타임에서였다. 커피수업이 끝나면 오후 1시, 가끔씩 시간이 맞는 사람끼리 잔뜩 주린 배를 움켜잡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근처 식당으로 달려갔고, 겨우 허기를 달래고 나면,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자리로 이어지곤 했다.
어쩌면 우리의 일탈은 배고픔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함께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잉태되었는 지도 모른다.ㅎㅎ
여행얘기를 꺼낸 건, 아마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과 자주 가봐서 너무 좋았다는 사람, 이렇게 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기억된다.
여느 모임에서나 여행은 흔하게 등장하는 화두로 그 순간 반짝 빛났다가 말거나, 좀 더 발전하면 돈을 조금씩 모아보자는 구체적인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정해진 수순인데, 서로의 바쁜 스케줄이나 돈문제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보통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많다. 잔뜩 들뜬 채, 한창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정색을 하며 초를 칠 분위기는 아니어서 의례 그러다 말겠거니 생각하며, 분위기에 맞춰 그러자고 흔쾌히 추임새를 넣곤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커피 2급 자격증 시험을 치고 난 후, 개인적으로 두 번째 만남을 가진 때였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행 얘기가 나왔는데 아예 날을 잡자는 누군가의 말에, 아는 여행사가 있다며 또 다른 이가 즉각 호응을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여행사에 전화를 걸더니, 아예 5월 중으로 나와있는 일정을 두서너 개 잡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도 설마 했는데..
이후 여행 계획은 그야말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사실, 난 알바도 있고 다음 교육 일정을 받아놓은 터라 난감했지만 보기와 다르게 똑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빠져나올 적절한 타이밍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여행경비를 결제하기 전까지 어떤 변수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남몰래 기대를 했었는데,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간에 여행날짜가 맞지 않아 조정해야 하는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그 또한 적절히 살리지 못했다. 호시탐탐 빠져나갈 틈을 엿보던 나는 결국 돈이 들어간 후에는 여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획에 없던 2박 3일의 일본여행을, 2차로 들어간 취업교육을 이틀이나 빼먹은 채 다녀오고야 말았다.
인생을 반백 년 살다 보니 이전엔 결코 있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던 일들도 겪게 된다.
몇십 년을 사귀어도 1박 여행조차 가기 어려운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잠깐을 알아도 이렇게 단숨에 해외여행으로 건너뛰는 경우도 있으니... 어디 사람과의 알고 지냄을 시간의 길이로만 따질 수 있겠는가...
누구보다 자기반성에 철저했던 나지만, 이제 와서 굳이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에게 생경한 경험이었지만 이 또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자평해본다.
5월을 한 주 남기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본을 다녀왔다.
내가 가는 곳이 오사카를 중심으로 고베, 교토, 나라지역이었다는 걸 안 건, 여행을 겨우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