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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l 13. 2022

날마다 밥상 차리는 여자

내가 밥순이가 된 이유

 

 결혼 전까지 난 밥에 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저 주어진 대로 먹었고 고등학교 땐 입이 짧아 도시락마저 남기고  적이 많았으니 밥에 대한 애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히려 아무 거부감 없이 인스턴트 음식을 즐겼던 것 같다.

그만큼 먹는 것, 특히 밥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한 이 나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직접적인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매스컴이나 다양한 루트를 통해  아내의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출퇴근하는 남편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 결혼의 기본자세라는 걸 암암리에 학습한, 아니 세뇌당한 세대였으니까.

여하튼 결혼은 요리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내가 관심을 가지고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된 계기였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요리가 나의 일상을 슬금슬금 잠식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은 누가 뭐래도 출산 이후다.

하나, 둘, 자식을 낳고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아이들 입안으로 무언가 넣어주기 위해서는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굴려야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발달하지도, 그렇다고 아이를 위한 이유식이 널리 공유되지도 않던 때라 앞서간 선배들, 친정엄마, 그도 저도 아니면 관련 요리책을 사다 직접 읽고 몸소 해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요리를 너머 그 이전 단계인 식재료에까지 관심이 확대된 건

요리를 향나의 어설픈 오지랖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와 함께였던 둘째 때문이었다.

처음엔 태열인 줄 알고 방치하다가 아토피가 점점 그 기세를 온몸으로 뻗치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수소문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헤집고 돌아다니기를 어언 2년, 무한 루프처럼 나았다 재발했다를 반복하는 세월 동안 아이나 나나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늘어져 막 포기하려는 찰나, 기적처럼 아토피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제법 그을린 건강한 피부로 20대가 된 둘째...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말이 1층이지 거의 반지하에 동향인, 벽지 속 곰팡이가 고스란히 서식하던  30년 이상된  맨션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2년 볕이 잘 드는 남향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상태가 서서히 호전되는 상황을 경험하고 그저 유추만 할 뿐...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음식을 너머 식재료에도 관심을 가진 건. 아니,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환경에서  재배되고 키워졌는지, 우리의 탐욕스러운 혀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학약품이 살포되었는지...


그렇다고 내가 열렬한 환경론자는 아니다.

나나 나 이전 세대는 어차피 반평생을 살았으니 치명적인 독이 든 음식을 먹지 않는 한, 그럭저럭 나이 탓을 하며 시름시름하다 그런대로 기대수명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그 이후의 세대들은?

정작 주범은 우리를 포함한 그 이전 세대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 혹은 아직 잉태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원죄마냥 전가된다는 점에서 나 또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기적처럼 아이의 아토피가 낫고 그것을 당연하 받아들이는 세월을 지나고 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업에 쫓기며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거나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 잠재우는 식도락 외에 달리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와 있었다.


 얼마 전 타지에서 자취하며  학업으로 바빠 일 년에 서너 번 집을 찾는 큰아들의 팔과 무릎 뒷부분이 울긋불긋 솟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로 먹는 것이 부실했던 아들,  그러고 보니 녀석은 군대를 포함해 근 7~8년 동안 집을 떠나 있는 셈이다.  간단하게라도 요리하는 법을 익히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댔건만 몇 번 시도하다가 이내 그만둔 눈치다. 하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드는, 생각보다 많은 품과 음식물쓰레기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아들은 다양한 맛의 닭가슴살이면 충분하다며 쌀과 김치만을 고수할 뿐이다.


 밤이면 가렵다는 아들에게  보습제를 사다 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는 그날따라 왠지 세상이 미워졌다.


 과연 우린 무엇을 위해 그렇게 내달리고 있는 걸까?

밥만 먹고살 순 없지 않냐고 어딘가를 향해 마구 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정작 따뜻한 밥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밥하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때론 밥할 힘도 없이 파김치가  되도록 일하면서 밥 때문에 싸우고 있는 우리의 종착지는 과연 어딜까?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이라는데...

인간이 생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건강하고 소박한 음식에 대한 중요성은 간과한 채 식자재에 퍼붓는 1차 가해에 이어 자극적인 맛과 화려한 비주얼로 2차 가해된 음식들로 건강은 무시하순간쾌락만을 좇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오히려 장려하고 조장하는 사회...


 언제였던가, 아기를 무척이나 이뻐하는 큰아들이 스치말한 적이 있다.

결혼하면 아기를 가져야 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고...

물론 그게 요즘 젊은 세대의 경제적인 문제에 기인함을 알고 있던 나는 멋진 할머니가 될 내 권리를 뺏지 말라고 우스갯소리로 답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음에 아들이 다시 그 비슷한 얘기를 한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할머니의 권리를 주장하기엔 손자, 손녀들이 감당해야 할 총체적인 문제가 너무 크므로...


 아들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난 두 손을 걷어붙이고 밥을 하기 시작한다. 보잘것없는 실력으로 밥과 그에 걸맞은 반찬 리스트를 짜느라 굳었던 내 머리는 온종일 냉장고 안을 스캔하느라 바쁘다.


 힘든데 그냥 시켜먹지...

남편은 밥에 유독 억척같은 내가 안쓰러워 옆에서 혀를 차며 만류한다.

물론 나도 안다.

집밥 한두 번 먹는다고 몸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오히려 전문 식당에서 외식을 하거나 시켜먹는 것을 더 좋아할 지도...


 하지만 한창 바쁜 우리 아이들이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밥 한 끼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았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어릴 적 어려운 환경에서도 밥 하나는 부족하지 않고 다양하게 해먹이려고 애썼울 엄마에게서 내가  부지불식간에 배웠던 것처럼...


 달랑 남편과 둘만 남은 지금도 난 어김없이 밥상을 차린다.

먼 길을 돌아 시간을 허락받은 지금, 우리가 그토록  찾던 소중한 것 중에 하나가 느리게 밥을 고, 상대와 눈을 맞추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순간임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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