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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l 12. 2022

엄마와 요양원

요양원을 다녀와서...

 

 오늘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뵈러 갔다. 근래 들어 유독 갑갑함을 호소하셔서 이번에는 잠깐 콧바람이라도 쐬어들일 요량으로 병원의 허락을 미리 받아놓은 터였다.

지난번, 어버이날에 즈음해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면회를 한 지 두어 달만이지만 기나 긴 코로나 기간을 감안하면 거의 3년 만의 외출이다.


 요 며칠 전화로 계속 여기가 아프네 저기가 아프네 하소연을 하시더니 급기야 어제는 당뇨로 발톱이 다섯 개가 다 빠질 지경이라는 호소에 깜짝 놀라 병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다행히 무좀으로 인한 증상이라며 오히려 발톱이 상처 없이 빠지면 더 낫다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근 3년 만에 외출이 허용된다 하여 부랴부랴 외출 예약을 잡았다.


 약속이 잡히면 그날 아침 일찍부터 줄곧 전화를 해대는 엄마.

행여 기다릴세라 급하게 달려가 본 엄마는 전화 속에서 아프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응석받이 아이의 모습은 어디 갔나 싶게 정정한 모습이었다. 벌써부터 준비를 마치고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이른 점심으로 드시고 싶다던 냉면을 먹고 난 후 나의 옷깃을 붙잡고 가자는 다음 장소가 뜻밖에도 동네 미용실이었다.

팔순이 넘었지만  간병인에게 삯을 주면서까지 주기적으로 머리에 검은 물들이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 우리 엄마, 엄마도 여자이고 사람인지라 자신의 외모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기준은 고수하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여겨져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는 동안 삼삼오오 동네 사랑방 드나들듯 찾아온 지인분들과 모처럼 쌓아놓은 수다를 떠느라 미용실은 어느새 흰머리 소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파마를 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려서 어느새 약속한 귀가시간인 3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안 그래도 병원에서 몇 차례 걸려온 전화로 난감해하는 나의 에서 엄마는 간호사가 들으라는 듯이 저녁까지 먹고 갈 거라며 으름장을 놓으신다.


 쩔 수 없이 귀가시간을 6시로 늦추고 어제 검색해서 아놓은 의료기기를 전시해놓은 카페에서 체험도 하며 3년 만의 외출을 만끽하느라 그만 두 번째 귀가시간도 놓쳐버렸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초조해진 신데렐라처럼 6시를 넘기자 내 마음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단히 작심을 한 모양이다. 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점심때 먹은 냉면이 벌써 꺼졌다고 저녁으로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요양원에도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지난 때라 식사를 거른 채 보내드릴 수는 없는 노릇, 우린 부랴부랴 식사할 곳을 찾아 낯선 동네를 몇 번이고 뺑뺑이 돌았.

뒤늦게야 가끔씩 가족모임을 가졌던 고깃집을  생각해내곤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뒷좌석에서 당신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딸 내외가 안쓰러웠는지 그제야 괜히 불러서 고생시킨다고 자책을 하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막상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자 초조함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오히려 엄마한테서 옮겨온 배짱까지 두둑해진 우리는 서로 고생했다고, 많이 먹으라고 권하며 제법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엄마의 부탁으고생하간호사와 간병인들을 위한 간식을 사들고 병원에 복귀한 시간은 약속시간을 훨씬 넘긴 7시 반경이었다.

당직 간호사에게 엄마를 인계하고 돌아서려는데 어느새 고집불통 꼬마에서 자식 걱정밖에 모르는 엄마로 돌아온, 유난히 검은 파마머리가 어딘지 서글픈 할머니가 인사를 한다.

 엄마 때문에 고생 많았제? 차 조심하고...

너희들도 힘들 텐데... 이제... 안 와도 된다...


 가끔씩 저밖에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굴어 번번이 세 딸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결코 굴함이 없는 엄마...

엄만 오늘 하루의 추억을 밑천 삼아 또 얼마간의 시간을 인내하시겠지...


 불현듯 미용실에 모인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거들던 엄마에 대한 품평들이 떠올랐다.


제법 멋쟁이였지. 아래위로 깔맞춤해 차려입고 거기다가 가방까지 구색 맞춰 들면 아주 멋졌지.

젊을 땐 미인이었어. 나름 놀러도 많이 다녔지. 어려운 형편에도 어디 여행 간다면 빠짐없이 꼭 끼곤 했지...


 한 땐 네 남매에게 전부였던 멋쟁이 엄마. 언제나 그 모습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앞에서 한 인생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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