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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l 10. 2022

해운대 해변 열차 한 번 타실래요?(2)

해변열차 옆에서 인생을 걷다.


 결혼 후 20여 년간  방콕족이었던 우리는 퇴사 후 막상 깔아진 판 위에선 어떤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일단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알아보고 찾아가는 연습을 하던 차에 오늘은 그동안 벼르던 해운대의 해변열차를 타러 가기로 했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탓에 오후 3시쯤 출발하면 한낮의 더위는 피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계산하에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여정을 시작했다.


 평일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과 신호대기로 차의 진행이 유독 더뎌지는 구간에 이르자 우린 직감적으로 해운대가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해운대는 역시 해운대였다.


 거의 3시간 정도 걸려 오늘의 목적지인 블루라인 미포 정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 4.7km 거리인 미포와 송정 사이를 왕복하는 해변열차,

우린 돌아올 땐 걸을 요량으로 편도 티켓 2장을 끊었다.

 다행히 10분 후 출발하는 6시 열차가 있어서 비교적 짧은 대기로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미포를 출발해 달맞이 터널,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구덕포, 송정으로 이어지는 해변 열차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를 공공 개발해 2020년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승강장에 서서 저만치 다가오는 기차를 보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질 해운대 바다마음을 뺏앗긴 나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를 질주하고 있었다.


 모든 좌석이 일제히 바다를 향하고 있는 열차에 탑승하자 평일이라 승객이 많지 않은 덕분에 우린 수월하게 기차 맨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걸쭉한 부산 사투리의 안내 방송이 시작되자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0여분 남짓, 길지 않은 시간이 빨리 지나갈까 봐 나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바다와, 서로에게 물들었는지 한층 더 깊어진 하늘을 휴대폰에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편은 신이 난 강아지마냥 방방 거리는 나를 진정시키며 가만히 앉아서 감상할 것을 권유했다.

어렵게 현장에 도착해서도 그 풍경을 담아내느라 연신 휴대폰을 눌러대는 바람에 정작 그 아름다움은 사진을 통해 확인하는 우리들...ㅎㅎ


 난 잠시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매 순간 과거로 흘러가 버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선로 옆으로 나 있는 산책로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얼른 그들과 섞여  걷고 싶었다.

왠지 걸으면 빠르게 흘러가는 과거를 조금이나마 현재에 더 붙잡아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다.



 종착지면서 또 다른 출발지인 송정역에 도착했다.

우리 눈앞엔 세상의 푸름이란 푸름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송정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었다.

온통 바다와 하늘만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느라 자리다툼을 하고 가끔씩 백사장이 거들뿐, 사람들은 빼어난 수채화에 찍힌 은 점들에 지나지 않았다. 가끔씩 그림을 망치기도 하는 검은 얼룩 점들...


 돌아올 때 선로 옆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바라본 풍경은 기차에서와는 달랐다.

기차를 타면서 스쳤던, 때론 놓쳤던 풍경 하나하나를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린 마음에 드는 곳에선 잠시 멈춰 사진을 찍거나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여름 바닷가의 끈적끈적한 습기는 남아있었지만 태양이 힘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라 걷기에 한결 편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송정과 미포 사이 해변 길은 해파랑길 2코스에 속한 길이기도 했다. 여행할 곳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 전망대까지 총 750km에 달하는 해변길, 숲길, 마을길을 총 50개 코스로 구성해서 만든 대장정의 걷기 길이다. 체력을 좀 더 기르면 꼭 한번 걸어보자고 벼르고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오늘 맛보기라도 그곳 속한 길을 걷고 있자니 해파랑길에 대한 애착과 함께 완주에 대한 로망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 같았다.


 

 평일 오후, 두 실업자 부부의 낯선 곳에서의 산책.

2시간의 산책을 위해 왕복 5시간 거리를 운전해온 우리들...


 저만치서 초로의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앞서 걷고 있었다.

바닷가에선 해가 붉은 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센치한 분위기 탓이었을까?

'절규'를 그릴 당시의 화가 뭉크가 느꼈을 공포는 아니지만 나는 갑자기 그 노부부를 앞질러가 묻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저희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요?

시간을 10년 정도 돌린다면 저희와 같은 선택을 하실 것 같은가요?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우린 잘하고 있어...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 노을 속으로 하늘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위풍당당한 모습의 엘시티 건물이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새 바다 안개가 건물의 눈을 가리고 마지막 해변열차와 그 위의 스카이 캡슐이 종착지이자 새로운 출발지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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