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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자의 사랑과 행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3

by 정현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여주인공 테레자는 체코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던 그녀의 엄마는, 수많은 구혼자들 중에 훌륭한 배필을 골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리라 꿈꾸었지만, 어쭙잖은 선택으로 테레사가 생기는 바람에 그녀의 바람은 그만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서 현실의 구차한 삶과 함께 자신의 존재 의미였던 아름다움마저 사라지자, 엄마는 걷잡을 수 없이 막 나가는 시골의 무지막지한 촌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녀의 발목을 잡았고, 외모 또한 자신을 꼭 빼닮은 딸을 곱게 보아 넘기지 못한 엄마는, 급기야 테레사를 학교까지 중퇴시키며 갖은 아르바이트로 혹사시킨다.

호색한인 새아빠로부터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삶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 테레자는 엄마로부터 강압적인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조차 확립하지 못한 채,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간다.


테레사는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마침 왕진을 왔다가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던 토마시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들은 각자 의미를 둔 여러 번의 우연이 겹치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머지않아 테레사는 토마시가 건넨 쪽지를 들고 탈출하듯 엄마의 집을 나와, 무작정 그가 있는 프라하로 떠난다.

둘은 곧 열렬한 사랑에서 빠지지만 그 방향은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았다.

테레자를 사랑하면서도 늘 채워지지 않는 자유에 관한 열망 탓인지 다른 여자들과의 숱한 애정행각을 멈추지 않는 토마시를 보면서 그녀는 수시로 악몽을 꾸며 괴로워한다.



훗날 카레닌이라는 개를 키우고 또 떠나보내며, 테레자는 인간들의 사랑이란 것이 동물에 대한 사랑보다 얼마나 열등한가 생각하게 된다.

그녀에게 동물과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었다. 테레사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았다.

반면 토마시에 대한 사랑은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했다. 아무런 요구 없이 그의 존재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겪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코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레닌에 대한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서 겪었던 수치심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인 복종과 사랑을 강요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테레자는 치를 떨었다.


또한, 테레자가 카레닌과의 사랑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갈등이나 가슴 매이는 장면, 진화 같은 것이 없는, 반복의 욕구에 기인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동물과의 사랑이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에 기반을 둔 반면, 인간들의 사랑에 있어서의 시간은 이와 같이 원형으로 돌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 발전을 요구하며 직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테레자는 어느 날 밤 꿈에서, 한없이 작아져서 토끼로 변한 토마시를 가슴에 앉고서야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한낱 나이 든 트럭운전사로 변해, 더 이상 수술할 수도 없이 굳어진 손으로 트럭 바퀴를 갈아 끼우는 토마시를 보고서야, 자신이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하듯, 토마시가 오롯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마을 사람들과 춤을 추러 간 곳에서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안겨 춤을 추면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토마시,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근원이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 <중략>...


"당신에게 의사 일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했지만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상관없어. 나는 잃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당신의 임무는 수술하는 거야!"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그들의 행복의 기준은, 그들이 살아왔던 삶이나 생각만큼 달랐지만,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던 행복의 실체에 다다른 듯하다.

비록 세속의 기준으로는 한참 모자라는 조건에서, 서로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지녔을지언정,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을 찾았고 상대방 또한 동의한다니, 다이나믹하고 길지 않았던 그들의 인생이 결코 덧없지만은 않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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