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전체 스토리는 언뜻 보면 개성이 강한 네 남녀의 연애사를 다루는 가벼운 소설 같지만 그 내용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코 만만한 작품은 아니다.
유추하기가 쉽지 않은 여러 가지 은유와 상징, 3인칭 시점으로 일관하던 흐름을 끊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1인칭 시점과의 혼재,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뒤죽박죽 섞여있는 시간의 흐름, 중간중간 체코의 역사와 맞물여있는 역사적 사건들의 언급 등, 가벼운 연애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그 무게에, 마치 소설의 제목처럼 웬만한 인내심을 가지고는 견뎌내기가 녹록지 않은, 그런 작품들 중 하나였다.
이런 류의 소설들은 흔히, 그 내용의 난해함만큼 독자가 느끼는 감상도 각인각색일 수밖에 없고, 그에 바탕을 둔 리뷰도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점수 맥일 수도 없는 법, 나 또한 책을 읽는 중간중간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고, 관련 글이나 영상을 참고로 하면서 리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작가가 제시한 여러 가지 상징을 통해 소설과 4명의 주요 인물들을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인생의 가벼움과 무거움
작가는 소설의 첫 장에서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을 가지고 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이란 수 백, 수 만, 수 억겁의 시간을 통해서 계속 반복되는, 즉 영원히 회귀되는 것이라면 그 무게감이 만만찮겠지만, 우리의 삶이란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회성이기에 아무런 무게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새털처럼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인생이 매 순간 무한 반복된다면 우리는 영원성에 못 박히게 되고,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게 되는데, 니체는 이런 이유로 영원회귀사상을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거운 짐이라는 영원회귀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짐이 무거울수록, 그리하여 그 무게에 짓눌린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울수록,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져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지상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지 못해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이렇듯 작가는 인생의 무한성과 유한성,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가장 신비롭고 미묘한 모순에 주목하며 소설을 시작한다.
토마시의 가벼움
토마시는 잘 나가는 외과의사로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둔 이혼남이다. 그는 사랑과 섹스는 다르다는 지론하에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가며 바람을 피운다.
뭇 여자들과 숱한 연애행각을 벌이면서도 그가 고수하는 철칙이 있다면, 한 여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 것, 사랑을 나누되 잠은 같이 자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이런 규칙을 무너뜨리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유일한 여자가 있었으니, 몇 번의 우연이 겹쳐 그가 운명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여자, 테레사였다.
그녀가 마치 구약성서의 모세나 신화의 오이디푸스처럼, 강보에 싸여 강물에 떠내려온 아기와 같다는 생각에, 토마시는 연민인지 동정인지 모를 거부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의 바람기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토마시가 이혼 과정에서 전 부인과 아들, 부모님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여자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토마시는,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 감상이 배재된 관계만이 두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일명 '에로틱한 우정'이라는 미명하에, 여자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자신만의 타협점을 찾은 듯하다.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나 인간 자체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해소하는 성적 도구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토마시는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하지만 작가가 토마시라는 캐릭터를 통해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삶에서 자유와 독립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인물이 그것을 전적으로 억압하는 공산주의체제하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나마 외부의 감시와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은밀한 개인적인 공간에서나마 자신의 열망을 마음껏 발산하고픈 욕구가 이토록 뒤틀린 모습으로 발현된 것은 아닐까?
소설 후반부에서 토마시는 본의 아니게 사상문제에 걸려 유리창 청소부와 트럭운전사로 전락한다. 하지만 전직 의사라는 타이틀로 여건이 주어지는 한 그의 바람은 계속되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토마시를 보면서 그에겐 명예나 권력욕보다 자유라는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한 인간유형임을 느낄 수 있었다.
토마시는 점점 죄어오는 듯한 정부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더 낮은 신분인 트럭운전사로 직업을 바꿔가며, 더 깊은 시골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엔 더 이상 바람을 피울 낯선 여자들의 존재도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토마시는 나름 자유와 여유를 한껏 누리지만, 결국 뜻하지 않는 사고로 그만 목숨을 잃게 된다.
아! 인생의 아이러니와 덧없음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