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마산 봉암저수지를 다녀오며

by 정현미

지난 주말에 인근의 봉암저수지를 찾았다. '봉암수원지'라고도 불리는 이 큰 규모의 못은 1930년 ,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제 부역자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려 주차장에 도착했다. 팔용산 계곡 아래에 자리 잡은 저수지까지 닿으려면 여기서 다시 20분 남짓 걸어야 한다.

4시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수시로 이뤄지는 작업교대 행렬마냥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무성한 나무들을 지붕 삼아 평지처럼 완만한 산길을 걷고 있노라니, 송골송골 잔 땀들이 하나둘씩 피부를 뚫고 나왔다. 몸은 곧 찜찜한 물기로 끈적였지만, 초여름 날씨에 이 정도로 쾌적한 산책로가 흔치 않다는 생각에, 땀의 잔해물들을 기꺼이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 저수지를 에워싸고 있는 석축 콘크리트 위로 올라갈 차례였다. 수직으로 뻗었다한들 기껏해야 4~50개 계단인데, 경사진 길이 힘든 나에겐 여기가 최대 난코스였다.

한 두 번 심호흡을 해가며 계단을 오르니, 노고에 화답하듯 하늘을 담은, 탁 트인 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적절한 인간의 수고로움을 가미해 천연의 자연을 담아낸 조화가 실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2005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괜한 일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저수지를 감상하며 그 둘레를 또 걸었다. 그 크기만큼 둘레의 길이도 만만찮았지만, 중간중간 쉬면서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계속 걸었다. 어느새 다시 원위치, 저수지 입구에 닿았다.

이번엔 가파른 계단옆으로 나있는, 완만한 길을 택해서 내려오기로 했다. 산 길 중간까지 이어져 있는 길을 걷다가 올라올 때 힘들었던 계단 길을 바라보니, 문득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한창 일로 바빴던 젊은 시절, 이 시는 나에게 자기 계발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매 순간,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일깨우며, 될 수 있으면 남이 가지 않은, 쉽지만은 않은 길을 선택해서 고군분투하라. 그러면 남들과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던 무리 중 하나였다.

한 편으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회한이나 미련,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상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문학에 뜻을 품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던 20대의 시절의 시인이, 변변한 직업도 없이 구둣방 주인, 주간지 기자, 농장 경영 등을 전전하던 자신의 처지를 시로 표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자신의 집 앞에 난 두 가지 길을 굽어보며,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음을 알기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인의 아쉬운 마음이 시에서도 엿보인다.

그리고 시인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불안한 마음이지만 결코 그 길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감으로써 결국에는 서로 같아지리라고 믿는 듯도 하다. 비록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더라도, 하나를 선택하고 꿋꿋이 걸어감으로써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시의 마지막 행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남겨두고 싶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 산을 오르내렸던 두 길을 보듯 내 인생의 두 길을 본다.

선택의 순간, 나 또한 많은 고민을 했고, 나의 선택은 늘 옳았다고 주문을 걸어본다. 어차피 나머지 길은 가보지 않았기에 비교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에서 처럼 어떤 길로 갔더라도 하나의 목표를 품고 꾸준히, 성실히 갔다면 시간차는 있을지언정 그 도착지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위로해 본다. 가팔랐든 완만했든, 결국

내가 택한 그 길들이 그날의 목적지인 저수지에 나를 데려다

놓은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난 여러 갈래의 길 앞에 서는 상황을 수시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선택에 앞서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지금의 나의 고려 사항은 단 하나, 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다치지 않고 평화로운가?'

가파르든 완만하든 괘념치 않고, 오늘도 그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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