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1)

나의 첫소설

by 정현미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 여덟 시간의 진통 끝에 딸아이를 출산한 아내는 막 탯줄이 끊긴 주름투성이의 울음소리를 확인하고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늘 어려워하던 숙제 하나를 완성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병실로 옮겨진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내는 좀처럼 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평소 얕은 수면으로 힘겨워하던 그녀의 모습에 익숙한 탓인지 도형은 이따금씩 발생하는 주변의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는 아내가 낯설면서도 왠지 안쓰러워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내의 조그마한 손이 마치 겨울나무의 거칠고 메마른 가지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불현듯 2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도형이 결혼문제로 부모님을 찾아뵌 후 그녀를 만났던 곳은

그녀의 원룸 근처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었다. 미세한 공기 속에서 느껴지던 무거운 기운 탓인지,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덤터기를 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의 홀어머니가 미국에 계신다는 이유로 상견례까지 큰 아버님 내외와 치른 것도, 고리타분한 노인네들 입장에선 백번 천 번 양보한 일인데 사돈 없는 결혼식이라니...

괘씸한 마음에 이 결혼 못 시킨다며 노발대발하던 아버지를 진정시키기까지 도형에게도 힘든 하루였다.

그 또한 서운한 맘이 없지 않았기에 그녀를 대면했을 때 애써 위로하기보다는 다소 건조한 말투로 부모님의 심경을 대변하듯 전했고 그녀는 미안하단 말 외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저 장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막연한 상황이 아닌, 무언가 명백한 이유로 자신만이라도 설득해줬으면 하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어 오르던 순간, 도형은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투명한 차 테이블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며 마주 잡고 있던, 남은 물기마저 증발해버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앙상한 두 손을 보고 말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녀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을 번민과 고통의 나날들, 그 저릿한 고단함이 고스란히 그의 마음에 와 꽂혔고, 그날 이후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녀를 품기로 다짐했다.


아내의 손을 어루만지던 도형은 문득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난 듯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아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 머리맡에서 그녀의 휴대폰을 발견하자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전원을 켰다. 평소 아내는 자신의 휴대폰에 관해 유독 예민하게 굴며 애지중지하는 터라 이렇게 만져본다는 건 언감생시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지만 그로선 이것 외에 달리 연락처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잠시 멈칫했던 그가 아내의 오른손 엄지를 살짝 들어 휴대폰 위 지문 인식란에 두세 번 눌러주자 잠겨있던 휴대폰 화면이 의외로 쉽게 무장해제되었다.

휴대폰 바탕화면에선 다정한 모습의 두 여인이 그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멀리 미국에 계셔서 사진으로만 뵌 다소 젊은 시절의 장모님과 그 뒤에서 엄마를 한껏 껴안으며 얼굴 전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앳된 얼굴의 아내였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환한 미소에 도형은 잠시 눈이 아려와 자신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내지를 뻔했다.


도형은 서둘러 연락처를 검색하고 송신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는 사이 잠든 아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병실 밖 복도로 나왔다.

가끔씩 아내가 통화하다가 바꿔줘서 몇 번 짧은 안부인사는 드렸지만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몇 번의 신호음 후에 무언가 낯선 기계음이 들리더니 수화기 저 편에서 낯익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장모님, 저예요. 김서방입니다."

"아, 김서방인가? 잘 지내고?"

“네.. 선희가 방금 아기를 낳았어요...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아, 그래. 사돈댁은 다 평안하시고?"

“?... 네... 선희가 자기를 꼭 빼닮은 예쁜 딸내미를 낳았어요."

“.... 아, 내가 직접 가서 만나 뵈어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미안하네..."

“.. 아, 네....”

잘못 알아들으셨나? 잠시 의아해하고 있는 도형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건드렸다.

“형님...”

처남이었다.

“어.. 처남, 안 그래도 장모님과 통화하는 중인데..."

순간 굳어진 얼굴의 처남이 도형의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듯 낚아채더니 화면을 흘깃 보고는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자네, 왜 그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도형은 마치 무엇에 한 대 얻어맞은 듯 얼떨떨했다.

“그... 게... 사실은....”

처남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미처 다음 말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처남의 그런 모습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던 도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시 장모님이... 치... 매신가?”

“아, 네.... 그게...."

그랬구나... 유쾌하지 못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도형은 일순간 어정쩡하게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하고 뚫린 듯한 묘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오래전에 생선을 먹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있다 문득 기분 나쁜 이물감과 함께 미세한 따끔거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키곤 하던 가시. 보잘것없는 크기 때문에 미처 빼내지는 못하고 품고 있던 그 가시를 오늘은 작정하고 숟가락에 큰 고봉을 이루게 쌓아 올린 제법 많은 양의 밥과 함께 제대로 꿀꺽 삼킨 그런 기분이었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찾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처남 앞에서 어정쩡한 태도로 난감했을 자신을 떠올리며 도형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산모가 깨어났나요?"

간신히 감정을 수습한 도형이 물었다.

"네.... 급히 찾으시네요.... 그리고..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처남과 함께 급하게 병실로 들어서자 몹시 상기된 얼굴의 아내가 매서운 눈으로 두 남자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처남 손에 들려진 자신의 휴대폰을 발견하고는 쏘아보듯 동생을 쳐다봤다.

아내에게 다가간 처남은 그녀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고는 두려움과 불안이 서린 그녀의 눈을 응시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걱정하지 마....”

휴대폰을 돌려받은 아내는 한층 안정된 모습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엷은 미소를 띠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나.. 조금만 더 잘게... 너.. 무... 피곤해서..."

도형은 모처럼 평안한 모습으로 잠든 그녀를 한동안 애처롭게 내려다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