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부모란...

나의 첫 소설 <그녀> 연재를 마치며

by 정현미

나의 첫 소설 <그녀>는 모녀간의 애틋함을 담은 글이다. 편모슬하에서 서로 의지하며 어렵게 인생을 헤쳐왔기에 갑작스러운 엄마의 비보는 딸에게 극복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 글은 엄마와 나, 그리고 이제는 장성해 부모의 손을 덜 타는 나의 자식들을 보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부모와 자식의 역할에 대한 나의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난 엄마에 대해 여느 집 딸들처럼 그렇게 애틋한 딸은 아니었다.

아들 하나와 밑으로 딸 셋인 집에서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가운데라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기보다,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요리조리 피하면서 가난한 집 딸들에게는 원죄처럼 안고 가야 할 집안 허드렛일들에서 용케 열외 되었다.

어릴 때 유독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그 형편에서도 나에게 지극정성이었다. 유달리 입이 짧은 나를 위해 도시락 반찬에 각별히 신경을 썼고 목에 가끔씩 올라오는 멍울을 삭히느라 밤새 당신의 손에 마른침을 묻혀가며 내 목을 문지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만 지금도 가끔 나에게 말씀하시곤 한다.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지만 귀하게 키운 자식이라고 다 효자가 아니듯 또한 효녀는 아니었다.

결혼 후 홀시어머니 밑에서 맏며느리로 시댁에 적응하며 내 살길을 도모하느라 친정에 발길이 뜸했던 것도 한몫했겠지만 사춘기 때부터 안으로만 침잠하는 성격에, 더 많은 교육을 받을수록 더 이기적이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가끔씩 나 자신에게서 발견하곤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배움이 짧았던 엄마가 그 지난했던 시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웠음을 잘 알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이따금씩 어린애처럼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엄마를 보며, 또 그런 엄마를 미워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다.

드라마나 영화, 혹은 지인에게서 엿볼 수 있는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없는 나는, 정말 나쁜 딸일까?

반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어머니의 경우, 뇌출혈이 재발돼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를 비롯해 시댁 삼 남매 모두가 심한 충격에 빠졌지만 하나뿐인 막내딸 시누이에게는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 한참을 그리워하며 힘겨워하던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얼마 전 만났을 때에도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그녀 삶의 근간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자식들을 본다.

아들들에게 난 어떤 엄마일까?

성년이 되면서 유독 잔소리와 간섭에 예민해하는 아들들.. 지금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입장이라 그런대로 잘 따르며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나중에 혹시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자녀가 성년이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부모란 그저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으면서 가끔씩 연락을 전하며 정신적인 지지만 보내는 존재로만 남는 것은 어떨까?

조금 더 나아가, 너무 애틋한 사이나 만나면 부딪히는 관계에서도 부모나 자식, 때론 사랑하는 사람의 예기치 못한 부재는 견디기 힘든 법, 그런 경우 또한 그저 사랑하는 이가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으며 가끔씩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막연한 생각에서 이 소설 <그녀>를 쓰게 되었다.

제목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유추 가능한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her>에서 차용했다. 비교하기조차 부끄럽지만 AI라는 공통 소재를 통해 인간의 외로움을 표현한 그 영화가 내겐 꽤 인상 깊었나 보다.


우리 세대의 부모관계에서 시작해 자식 세대로 넘어오면서

부모로서 우리가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양육과 교육문제가 전부였던 미성년 자녀가 성년이 되고 보니 자꾸 이런 고민에 천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산업이 발달하고 기술이 향상될수록 자꾸만 소외되고 외로워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존재가 그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는 믿음,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헛헛한 상실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소설에서 언급한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곱씹노라면 늘 마음 한쪽 어딘가가 불편했다.

부모를 사랑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를 조목조목 따지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가 되고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나 또한 외사랑이라는 죗값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런 복잡 미묘하면서도 한없이 부족한 나의 마음을, 소설을 통해서나마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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