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명,머얼 메이드(1)

나의 두번째 단편소설

by 정현미


"네, 제가 전화 부탁드렸어요. 수학학원 원장님이신가요?"

규진이 막 저녁을 먹고 가방을 챙겨 학원으로 출발하려고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규진아, 엄마 전화받아야 해서... TV 좀 끄고 갈래? 소리 좀 낮추든 지... 주방에서 설거지 중에 전화를 받았는지 엄마는 미처 고무장갑을 벗지 못한 한 손으로 전화기의 스피커 부분을 가리며 말했다.


규진은 리모컨을 찾아 소파주위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소파 한쪽 팔걸이 아래에 너부러져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든 규진은 싱겁게 끝난 숨바꼭질을 마무리 지으려고 전원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오늘 또 한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저녁 뉴스 속 다급한 앵커의 목소리가 규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요즈음 아이들 사이에서도 화제인 실종 사건에 대한 소식이었다. 올해 초부터 드문드문 발생하기 시작한 실종사건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그 피해자가 10명으로 늘어났다. 수사는 피해자가 10대에서 30대의 남성들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단서나 흔적도 찾지 못한 채 답보상태였고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번 실종자는 20대 김민호 씨로 지방에서 홀로 상경해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고 합니다. 김씨의 어머니는 김민호 씨와 3일째 연락이 닿지 않자 어제 실종신고를 했는데요. 이번 사건이 최근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실종사건과 같은 선상의 사건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머저리들...'

규진은 전원버튼을 누른 후 가방을 고쳐 매고 현관으로 향했다.


"아~네~,그럼 이번 주말에 테스트받고 개인 상담받을 수 있을까요?"

어느새 나머지 한쪽 고무장갑도 마저 벗은 채 식탁 의자에 자리를 잡은 엄마는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이번 주말...'

규진은 멤버들과의 게임약속을 떠올렸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엄마의 연례행사에 매번 들러리로 참가해야 하는 자신을 생각하니 갑자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마침 발끝에서 거치적거리던 찌그러진 종이컵을 냅다 걷어찼다. 종이컵은 규진의 키를 약간 밑 도는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길가로 떨어졌다. 그렇게 자신의 분노수치 또한 떨어졌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자신이 너덜거리고 구겨진 종이컵 신세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정해진 수순이었다. 토요일 오후, 규진은 앞으로 다니게 될지도 모를 새 학원에서 준비한 테스트지를 받고 익숙한 듯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어려운 문제로 도배된 테스트지는 학부모든 수강생이든 초반부터 기를 꺾어 놓고 말겠다는 학원의지의 반영물일 뿐이라는 걸 그동안의 숱한 경험으로 몸소 터득한 그였다.

전략상으로 배치한 기본적인 문제 몇 개를 제외하고는 객관식은 느낌으로 찍고 주관식은 생각나는 대로 긁적인 흔적만이라도 남기려고 애썼다. 학기마다, 어떤 때는 시험 사이사이마다 여러 학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몇 시간의 통화도 불사하는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시간 뒤 규진과 엄마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심판관 앞에 마주 섰다. 규진이 초, 중학생일 때는 안하무인으로 보일 정도로 그렇게 당당했던 엄마였지만 그만큼의 덧없는 세월 탓인가 그녀는 원장 앞에서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기본적인 몇 문제 빼고는... 심각합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힘들겠는데요..."

학원을 옮길 때마다 토씨만 달랐지 매번 비슷한 내용의 원장들 멘트였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엄마의 하소연 또한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때까진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성적이 계속 떨어져요. 책상에는 계속 앉아있는데... 공부 방법이 잘못된 건지... 가르치는 선생님들 말로는 머리는 있다는데 자신과 맞는 학원을 찾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초, 중학교와 고등학교 공부는 확연히 다르죠. 중학교 때 성적이 잘 나왔다고 고등학교 때도 그럴 거라고 기대하면 큰 오산입니다. 공부방법, 습관, 모든 걸 완전히 뜯어고쳐야 합니다."

규진의 생각엔 학원장들의 말이 거기서 거긴데 엄만 여전히 무슨 사이비종교의 열렬한 신자처럼 원장 말에서 무엇인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찾으려는 듯 진지한 눈빛이었다. 그래봐야 기껏 6개월, 아니, 겨우 2~3개월짜리 믿음일 뿐인 것을...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만 해도 한 학원을 꾸준히 보내던 엄마는 상위권 엄마들과 어울리면서 학원을 옮기는 횟수가 잦아졌다. 물론 그 근거를 시험성적에 뒀지만 언제가부터는 성적이 잘 나와도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자신이 스스로 세운 원칙을 미련 없이 파기하기도 했다. 그나마 최소한 중간, 기말 두 시험은 치르고 옮기던 행사가 중3, 1학기가 지나자 그 간격이 더 가팔라졌다. 함께 공부한 친구들은 한 둘씩 과학고며 영재고에 합격하는데 정작 규진은 과학고 2차에서 탈락하고 일반고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한 달을 꼬박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하던 엄마는 다시 그 내면의 에너지를 짜내어 새로운 전략을 딛고 일어섰다.

"규진아, 실망할 필요 없어. 특목고에 가도 어차피 내신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니까 차라리 우린 일반고에서 1등급을 받자. 네 실력이면 얼마든지 가능해."

사실 실망이 컸던 건 엄마자신이었다. 규진은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따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특목고 과정을 준비하면서 같은 상위권 친구라도 비상한 머리를 타고난 얘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안도감과 자만심에 취해 방심한 탓이었을까? 고등학교 첫 모의고사에서 국영수 1등급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에 비해 첫 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그래도 나름 지역 명문고인 학교를 너무 우습게 본 탓인지 내신대비를 철저히 하지 않았고, 또한 그 즉시 오류를 파악해 대처하지 못한 데다 흔들리는 멘털까지 더해져 지금 고2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남겨놓은 시점까지 오고 말았다.

그리고 과학고에 떨어진 것을 위로하기 위해 부모님이 사주신 최신형 컴퓨터 또한 지금의 성적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의도대로 공부하다 머리를 식힐 겸 주말을 이용해 한 두 번씩 오락 삼아 게임을 했다. 어디까지나 개인 절제력의 차이일 뿐 게임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규진은 무엇보다 절제력 하나만큼은 자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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