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와 같은 대학 동아리 동기이기도 한 그는 어느 날 뜬금없이 거제도에서 기원을 한다며 소식을 전하더니 지금은 조선소에서 일하며 열심히 삼 남매를키우는 다둥이 아빠가 되어있었다.
같은 기수 동기들과 1년에 서너 번 모임을 함께했었는데 아무래도 거리상으로 멀기도 하거니와 아이들 건사 문제로 언제부턴가 드문드문 보이던 그가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건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가끔 동기들과 계획을 잡아 거제도에서 모임을 하기도 했지만 2,3년에 한 번 꼴로 참석하던 횟수도 여의치 않았는지 그는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빠졌다.
우리 부부와 그는 좀 더 각별한 사이였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대학 시절 셋이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기에 다른 멤버들보다 그만큼 공유한 추억이 많은까닭이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 슬슬 여행할 곳을 찾던 우리는 애초에 계획했던 남해를 접고 친구도 볼 겸 거제도로 목적지를 바꿨다. 이왕 같은 바다라면 옛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 더 뜻깊을 것 같았다.
그와 마지막으로 본 게 큰아들이 입대하기 전 함께 한 거제도 가족여행에서니까 근 4년 만의 상봉인 셈이다.
많은 관광객을 피해 일요일과 월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숙소를 잡고 일요일 오전에 출발했다. 아빠를 잘 따른다는 두 딸을 대동한 그와거제 식물원 앞에서 만났다.
다소 주름진 얼굴 속에 대학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와 달리 애기 때 한두 번 본 아이들은 어느새 아가씨 티가 살짝 비치는 중,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그의 가족과 우리는 거제 정글 돔 식물원과 매미성, 여러 해수욕장을 돌며 사진도 찍고 경치도 감상하며 관광을 즐겼다. 제법 철이든 고2 첫째 딸과는 대화가 잘 통했고 아직 사춘기가 진행 중이라는 중1 막내딸은 새초롬한 모습이 볼수록 옛날 아기 때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저녁으로 친구가 사준 푸짐한 회로 배를 채운후, 피곤해하는 딸들을 택시로 태워 보내고 나서 우린 그가 마지막 코스로 추천한 옥포수변공원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를 삼킨 바다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서기어이 오고야 만 가을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이어지는 버스커들의 노래를 들으며 우린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들고 파도소리로 반겨주는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았다.
갓 미성년 딱지를 떼고 만난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맞은 세월로 50대의 중년이 되었지만 잠시 과거로 돌아가 깔깔거리며 한바탕웃었다.
그리고 그는 무슨 정해진 수순처럼 자신의 고단한 현재를 조심스럽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그의 고해성사를 듣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신부인 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