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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02. 2022

옛 친구와 함께한 거제도에서의 하루

지금이 바로 인문학을 공부할 때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러 거제도를 방문했다.

우리 부부와 같은 대학 동아리 동기이기도 한 그는 어느 날  뜬금없이 거제도에서 기원을 한다며 소식을 전하더니 지금은 조선소에서 일하며 열심히 삼 남매를 키우는 다둥이 아빠가 되어있었다.

 같은 기수 동기들과 1년에 서너 번 모임을 함께 했었는데 아무래도 거리상으로 멀기도 하거니와 아이들 건사 문제로 언제부턴가 드문드문 보이던 그가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가끔 동기들과 계획을 잡아 거제도에서 모임을 하기도 했지만  2,3년에 한 번 꼴로 참석하던 횟수도 여의치 않았는지 그는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빠졌다.

우리 부부와 그는 좀 더 각별한 사이였다. 남편의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대학 시절 셋이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기에 다른 멤버들보다 그만큼 공유한 추억이 많은 까닭이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 슬슬 여행할 곳을 찾던 우리는 애초에  계획했던 남해를 접고 친구도 볼 겸 거제도로 목적지를 바꿨다. 이왕 같은 바다라면 옛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 더 뜻깊을 것 같았다.

그와 마지막으로 본 게 큰아들이 입대하기 전 함께 한 거제도 가족여행에서니까 근 4년 만의 상봉인 셈이다.


 많은 관광객을 피해 일요일과 월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숙소를 잡고 일요일 오전에 출발했다. 아빠를 잘 따른다는 두 딸을 대동한 그와 거제 식물원 앞에서 만났다.

다소 주름진 얼굴 속에 대학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그와 달리 애기 때 한두 번 본 아이들은 어느새 아가씨 티가 살짝 비치는 중,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그의 가족과 우리는 거제 정글 돔 식물원과 매미성, 여러 해수욕장을 돌며 사진도 찍고 경치도 감상하며 관광을 즐겼다. 제법 철이든 고2 첫째 딸과는 대화가 잘 통했고 아직 사춘기가 진행 중이라는 중1 막내딸은 새초롬한 모습이 볼수록 옛날 아기 때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저녁으로 친구가 사준 푸짐한 회로 배를 채운 후, 피곤해하는 딸들을 택시로 태워 보내고 나서  우린 그가 마지막 코스로 추천한 옥포 수변공원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를 삼킨 바다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서 기어이 오고야 만 가을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이어지는 버스커들의 노래를 들으며 우린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들고 파도소리로 반겨주는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았다.

갓 미성년 딱지를 떼고 만난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맞은 세월로 50대의 중년이 되었지만  잠시 과거로 돌아가 깔깔거리며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그는 무슨 정해진 수순처럼 자신의 고단한 현재를 조심스럽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그의 고해성사를 듣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신부인 듯 그렇게

우리 앞에서 그동안 겪었던 자신의 개인사를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러더 마지막 멋쩍었는지 뜬금없이 인문학을 공부해야겠다는 포부를 덧붙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이미 몇 차례 겪은 그는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고 공감력도 떨어진다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형성된 관계에서 공허함을 느꼈는지 요즘 한창 유튜브로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며 새삼 그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각자 현재의 면한 문제를 토로하다 11시가 넘어서야 우린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8월답지 않게 밤바다의 바람은 차가웠고 그에겐 내일의 고단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 앞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돌아선 그의 쓸쓸하고 외로운 뒷모습에서 힘겨운 가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의 말처럼, 정작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버려지는 그런 과목들에 앞서 우린 인문학을 먼저 배웠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평생 함께해야 할 인간에 대해, 그 인간들이 사는 사회와 문화, 가치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했어야 했다.

숱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우리에게 결혼에 대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배우자를 어떻게 존중하고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소통해야 는지 그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대학입시를 위한,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지식만을 강요받았을 뿐, 100년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정 필요한 지혜는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오직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가치에만 매몰된 우리는 막상 경제적인 지위가 흔들리면서 진정 그 이상의 가치가 필요한 시기에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린다.

진작부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으로 단단해졌어야 할 가족은 증오만을 남긴 채 와해되고 그동안 튼튼하게 쌓아놓았다고 자부했던 여타 인간관계는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흩어져 버린다.


 그저 배운 대로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안정될 거라 믿었던 주름진 중년의 얼굴에서 흔들리는 우리를 본다.

그와 우리의 모습에서  휘청거리는 중년의 민낯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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