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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09. 2022

난생처음 법원에 가다(2)

5년 이상 끌었던 소송, 그 뒷이야기

 

 추석을 사나흘 앞둔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웬만해선 잘 받지 않는데 같은 권역 내 지역번호가 뜨길래 홍보성 전화면 바로 끊어버릴 요량으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뜻밖에도 법원이었다.

안 그래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송사가 있어

그 사건을 떠올리긴 했지만 굳이 법원에서 친절하게 그 과정을 확인할 리도 없고...


 '혹시 박ㅇㅇ라는  아시나요?'

차분한 목소리의 여자분이 낯익은 이름을 언급했다.

우리를 난생처음 법원으로 인도한 소송 당사자인 채무자, 그녀의 이름이었다. 몇 년 동안 꿈쩍도 않던 그녀가 나와 통화하기를 원한다며 연락처를 줘도 되는지 묻는 전화였다.

그 긴 세월 동안 남편과 연락을 주고받아선지 소송 당사자로 등재되어 있던 나의 전화번호는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전화가 걸려오기까지 단 1분도 걸리지 않은 시간 동안, 지난 2주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받지 못한 채 넘긴 학원 권리금에 대한 소송을 코로나 이후 5년 만에 재개한 우리는 마지막 수단으로 은행 압류를 걸고 추심명령을 았다.

그다음 절차를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알아본 후  압류한 은행을 직접 찾아갔다. 

법원에서 받은 추심 명령서를 보이며 제3채무자인 은행으로부터, 압류한 통장의 돈을 직접 넘겨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그 절차를 밟았다.


 시간이 걸린다기에 이제나저제나 연락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할 수 없이 서류를 접수한 지 일주일쯤 흐른 지난 금요일, 다시 은행을 방문했다.

사건을 접수한 담당 직원은 본인이 직접 연락해봐야 한다며 채무와 여신 관련 부서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연락한 결과, 잔고부족으로 추심명령을 실행할 수 없다고 결정이 났단다. 통장남은 소액의 잔고라도 줄 수 없냐고 했더니 최저 생계비를 웃도는 돈에 한해서만 지급 가능하다나?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사실 채무자가 어떤 은행과 주거래를 하는지,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린 복불복으로 하나의 은행을 골랐을 뿐이었다.

처음에, 절차를 밟으면 지급이 가능하다는 은행 직안내를 받았을 때만 해도 왠지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아 잠시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처음에 결심했던  마음을 고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훅 올라왔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선 추석이라도  지나고 나서 생각하자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중에 법원에서 온 전화를 받은 것이다.




  곧이어 채무자인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얼마 전에 통장이 압류된 걸 알았고, 자신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노라고 했다.

압류 전에 전화라도 주시지하며 오히려 섭섭하다며 속상해했다.

줄곧 남편과 통화했기에 난 이번이 그녀와의 첫 통화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드릴 건 드려야죠...

그녀는 5년이 넘는 동안 내가 속으로만 삼키던 말을 너무 쉽게 뱉어내고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힘들었다고, 4개까지 확장했던 학원을 다 정리하고 지금은 남편과 일용직을 뛰고 있다며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털어놓듯 넉살 좋게 늘어놓았다.

그리곤 그 기간 동안 쌓여 15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싹둑 잘라 100만 원을 바로 입금할 테니 압류를 좀 해결해달라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잊고 있던 세월만큼  그 사이에 쌓인 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가?


 하지만 난 더 이상 그녀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 나머지 돈을 더 받아내고자 그녀와 또 실랑이를 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그녀의 두리를 받아줄 일말의 마음도 없었기에 너무나 쉽게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리고 입금을 확인한 바로 그다음 날 법원으로 가서 다소 번거로운 압류해제 과정을, 그것도 수수료를 줘가며 처리해 버렸다.

마음 같아선 내가 속이 상한 세월만큼 그녀에게도 치도곤을 주고 싶었다. 돈을 건네받은 지금, 나는 더 이상 ''의 입장이 아니었으므로..


 몇 년 전 그녀를 직접 상대한 남편이 왜 그렇게 쉽게 들어주냐고 날 보며 타박하려다 말고 그냥 내 맘 편한 대로 하라고 태세를 전환했다.

그래... 내 맘 편한 대로...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돈문제로, 사람 문제로 마음이 불편하기 싫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 덕분에 난 많은 걸 배운 셈이다.

간단한 거래도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는 과 무엇보다 법원이란 델 왔다 갔다 하며 소송절차라는 걸  밟아보았고

겉으로 무던해 보이는 사람도 모두 내 맘 같지 않다는 달갑지 않은 사실도 받아들여야 했다.

어쨌든  땅과 한 몸인 듯 꿈쩍도 않을 것 같던 그녀가 반응을 해온 덕분에, 상처뿐인 영광일지라도 나에게 소소한 승리로 기억되는 경험을 안으니, 받지 못한 나머지 돈은 그에 대한 수업료로 갈음한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난 그녀를 잘 모른다. 학원을 하는 동안 멀리서 스치듯 보았 타인에 의해 왜곡됐을지도 모르는 평판만 들었을 뿐.

나와 통화하면서 내뱉던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적 너스레였지금도 난 알 수가 없다.

잘 나갈 땐 은 돈에도 그렇게 오만하던 사람이  오히려 절박할 때 숙이고 들어오는 모습에서 인생의 아이러니와 함께 씁쓸함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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