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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15. 2022

사천 남일대 해수욕장과 코끼리 바위

경남 사천 여행기(2)

 

 케이블카를 타고나서 우린 사천에서 유명하다는 '코끼리 바위'를 찾아 떠났다. 우선  바위를 품고 있다는 인근 남일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을 넘긴 때라 해수욕장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식사를 때운 후 스마트폰 네비를 켜고 그곳에서 채 1 km도 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 코끼리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감행했다.

해안을 끼고 있음에도 네비는 뒤로 나있는 내륙길로 안내했다. 의심은 들었지만 어쩌랴, 이젠 스마트 장치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길들여진 몸인 것을...


남일대 해수욕장

 10분 이상 걸어서 마주한 곳은 군사지역이라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돌아 길 사이에 숨어있던 계단을 발견하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확 트인 해안이 나왔다. 

오른쪽으론 남일대 해수욕장이, 왼쪽으론 드넓게 펼쳐진 자갈밭 너머로 코끼리가 숨어있을 것 같은 바다 위 큰 절벽이 위풍당당하게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보물을 찾기 위해 우리에겐 아직 자갈밭이 남아있었지만 그 존재가 확인된 이상 풀이 죽었던 마음에 다시 희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태풍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휘어진 철책을 지나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도로가 파손된 곳을 조심조심 걸어 지나온 뒤 다음 관문인 자갈밭을 마치 억지 춤을 추는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귀한 보물을 찾기 위해선 이런 험난한 과정쯤은 밟아줘야 한다는 듯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겨우 자갈밭을 지나 바다에 반쯤 잠겨있던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몇 번 건너뛰고 나서야 우린 자연이 빚어낸 웅장한 모습의 코끼리 바위를 영접할 수 있었다.


코끼리 바위

 익히 보아온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압도적이었다. 이미 전문가들 몇몇벌써부터 진을 치고 연신 각도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 절벽이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 작품인 코끼리는 비싼 몸값에 어울리게 길게 뻗은 코로 사천 바닷물을 유유히 들이키며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도 뭔가에 홀린 듯  연거푸 사진을 찍고는 위치가 좋은 곳에 터앉아 한동안 그 절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오직 자연만이 만들고 손볼 수 있는 천혜의 작품을 보며 그 웅장함 너머로 그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왜소함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카를 타며 그것을 만든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해 마지않았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건 왜일까?


여왕의 머리

 문득 대만의 유명 관광지인 예류 지질공원에서 독보적인 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여왕의 머리'라는 바위에 대한 기사가 생각났다.

자연의 침식과 풍화로 만들어진, 머리를 틀어 올린 여왕의 모습을 닮은 바위는 아이러니하게도 형성될 때와 같은 요인으로 매년 1cm씩 깎여 앞으로 5~10년 사이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라는 곳의 인근 섬에서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던 자연 형성물인 Azure window (아주르 윈도:푸른 창)  전날 불어닥친 태풍으로 하루아침에 그 모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이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지키지 못했고 지킬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자연이 내어 준 것이니 자연이 거둬가는 것이 순리일 지도...


몰타의 Azure window

 우리 인간은  웬만해선 노력하면 다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그 밑바탕엔 경제력이 받쳐준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연이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처럼 자연을 무분별하게  훼손한다면 결과는 명약 관학 하다. 단지 미약한 인간으로서 시기와 규모를 감히 가늠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사랑하는 자식을 통해서 배우듯 인간 또한 감탄해 마지않는 자연에게서 그 오만함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때로는 자식도 가만 내버려 두고 그저 지켜봐 주는 게 오히려 서로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자연 또한 이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날 것을 저어해 자식에게 모진 상처를 주면서도 억지로 내 안에 가두지는 못하는 것처럼 곁에 있을 때 한 번 더 보고 아끼고 사랑한다면 기꺼이  떠나보내는 것도 그리 슬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난 오늘 억겁의 모진 풍파를 견디며 자연이 잉태하고 키운 코끼리 한 마리를 오래오래 바라보다가 휴대폰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했다. 이젠 자신들의 삶을 위해 떠나 있지만 늘 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자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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