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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Oct 24. 2022

아들에게 가는 길(1)

나의 큰아들 방문기

 10월경 위쪽 지역으로 단풍구경을 가볼까 궁리를 하다가 내친김에 서울에서 재수를 하고 있는 작은 아들 집에 들르기로 했다. 

이런저런 계획을 짜다 보니 진주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큰아들도 눈에 밟혔다. 할 수 없이 이번 주에 큰아들에게 먼저 들렀다가 다음 주쯤 작은 아들에게 가는 걸로 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아들들을 방문하기로 결심한 순간, 항상 그랬듯이 내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바쁜 생활로 집에서 끼니는 전혀 해 먹지 않고 그놈의 닭가슴살과 바깥 음식으로 때운다는 녀석들,  뗏거리가 부족한 시대도 아닌데 물리적으로 독립시키고 나니 나는 늘 아이들 먹거리가 걱정이다.

 아들들과 드물게나마 통화를 할 때, 그 귀한 시간마저도 매번 잔소리로 채우는 나를 보면서 사실 끼니에 대한 나 혼자만의 고민을 진작에 내려놓자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방문 날짜가 잡히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내 마음과 몸은 이전 상태리셋되어 다시금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간편하게 집에서 한 끼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며칠 전부터 계획을 짜고 그에 맞춰 장을 보느라 흡사 동네잔치를 준비하는 것 마냥 마음이 부산해진다. 


 요즘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더 바쁜 큰아들은 번번이 챙겨 먹지 못해 음식 쓰레기로 남는 걸 뻔히 알아선지 뭘 해오는 걸 극구 만류했지만 난 최대한 버려지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꾸역꾸역  뭔가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날도 부담스러워하는 아들에게, 우린 지금 한창인 진주 유등축제를 보러 가는 에 들르는 거라고...

신경 쓰지 말고 스케줄 끝나면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일러두었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오후 3시가 넘어 아들이 사는 원룸에 도착했다. 학교 과제로 바쁜 아들에게 문자로 비번을 받은 후 현관문을 연 순간, tv에서나 봄직한, 가히 상상 가능한 20대 군필 남학생의 예의 그 특이한 냄새를 품은, 어지러운 방안 모양새가 눈앞에 펼쳐졌다. 집 앞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서로에게 눈치를 주며 자제를 권고하던 남편과 나는,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팔을 걷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치우고 이사한 이래로 한 번도 빨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있는 이불과 패드, 베갯잇을 벗겨 세탁기에 넣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안을 반쯤이나 점령하고 있는, 몸집이 큰 빨래건조대와 서랍장들의 위치를 바꾸며 우린 흡사 출장 서비스를 나온 부부 청소요원처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되자 남편이 헐거워진 콘센트 뚜껑을 발견하곤 동네 철물점을 찾아 나선 사이, 난 좁은 현관 한켠억지로 들어앉힌 손바닥만 싱크대 앞에 섰다.

외식도 어릴 때 얘기지 항상 바깥 밥을 먹는 아들생각해서  힘들지만 좁고 낯선 녀석의 부엌에서 반쯤 장만해온 재료들로 이것저것 소박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6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 아들과의 해후는 밥 먹는 시간을 포함해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깨끗해지고 달라진 자신의 방을 보고서 왠지 낯설어하던 아들은 힘든데 뭐하러 치웠냐며, 시험기간이라 그렇지 평소에는 깨끗하게 하고 다닌다며 괜히 머쓱해했다.

나도 괜히 아들이 신경 쓰여, 힘든 거 없다고... 엄마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라고... 그래도 힘이 남아있을 때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나마 네가 결혼하면 이마저도 해줄 수 없다고... 며느리가 엄청 싫어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우린 잠시 마주 보고 웃었다.

혹시 아들이 싫어할까 봐 식사 후 과일을 먹으면서 냉동, 냉장실에 넣어둔 음식만 알려 준다는 게 꼭 챙겨 먹으라는 그놈의 잔소리를 또 네댓 번 하고 말았다.


 이제는 스무 살이 넘어 건장한 청년이 된 아들, 학생이다 보니 경제력만 없다 뿐이지 어느새 완연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첫째라서 왠지 의젓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독립심 또한 강해 무엇이든 혼자 알아서 하는 녀석의 모습이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론  못내 안쓰럽고 섭섭한 건 왜일까?


 한창 일에 바빴던 시기, 나름 없는 시간을 쪼개 아들의 간식을 손수 만들어 먹이며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늘 아들에게 엄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색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나였지만, 정작 아들에겐  시기에 맞게 마음껏 응석 부리고 어릿광을 부릴 곁은 허락치 않은 건 아닌지 문득문득 마음이 쓰였다.


 중3, 막 사춘기가 시작된 건지, 그동안 참아온 건지 유독 아빠와 트러블이 잦았던 시기, 마침 아들이 선택한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서둘러 아들을 보내고 나서 난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었.

그 후,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치고 그 누구보다도 맘 편한 생활을 며 난  운이 좋았다고 만족해 했었다.


 하지만 둘째와 늘 티격태격하며 한 집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나서야 난 어렴풋이 깨달았다.

서로의 옆에서 함께 힘든 시기를 견디는 것 또한 가족의 권리고 의무이며  서로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 거쳐야 할 수순이었음을...

나 편하자고 큰아들에게 그러한 과정을 건너뛰게 한 건 아닌지 이제야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늦은 저녁, 하다만 과제가 남았다며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다시 학교로 향하는 아들...학과 공부와 취업 스트레스를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녀석의 처진 어깨 위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모든 고통이 끝날 거라고... 그러니 조금만 참으라고... 마치 있지도 않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죄책감 없이 거짓말을 일삼았던 나의 죗값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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