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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Nov 18. 2022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

언니의 집에서 행복을 묻다.


 11월 들어  크고 작은 행사가 연이어 두어 개 생겼다. 그것도 집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친정 언니의 둘째 딸, 즉 조카 결혼식이 충남 아산에서 있었고 경기도 안산에서, 훨씬 전에 잡힌 대학 친구들의 집들이를 빙자모임이 그것이다.

두 모임이 우연히도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 상간이다 보니 올라간 김에 둘 다 참석하고 오면 되지 싶어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장기간의 여행이라도 잡힌 마음은 일찍부터 부산스러웠다.




 예식은 토요일 오전 11시, 당일 출발하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KTX를 타면 2시간 거리라 가능했지만 그 이후에 이어질 일정을 소화하려면 정장을 비롯한 최소한의 짐이 필요했기에, 차로 움직이려다 보니 거의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그리고 가는 길에 진주에 있는 큰아들을 태워가야 했다. 몇 년 전 첫 조카의 결혼식 이후 각자의 생활로 소원해진 아이들에게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사촌 누나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겠느냐며 스케줄을 빼놓으라고 미리 언질을 준 였다. 서울에 있는 작은 아들에게도 상황을 봐서 당일에 내려오라고 일러두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전 날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 우린 일찌감치 최소 3박 4일의 일정이 소요되는 여정에 돌입했다.


 예식 하루 전인 금요일 밤에 아산에 도착한 우리, 다음날 조카의 결혼식을  치른 아들들만 돌려보낸 채 하룻밤을 더 신세 지며 2박 3일을 언니 집에서 지냈다.



 

 딸만 셋인 언니는 결코 아들 부럽지 않은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늦둥이로 낳은 막내딸이 아직 대학생이긴 했지만 명랑 쾌활하며 똑 부러진 딸들이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고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무뚝뚝한 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대기업을 다니는 형부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제 손자 사랑에 푹 빠진 언니 내외를 보며

손자보다 자신의 건강을 먼저 챙기라고 여전히 피붙이가 우선인 언니에게 충고하듯 말하긴 했지만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냥  평화로워 보였다.


 가난한 집에 맏딸로 태어난 언니는, 중간에 끼여 해야 할 일을 요리조리 피해 다닌 나와는 달리, 집안의 최전방에서 가난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우리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아빠의 시원찮은 벌이로 엄마마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시절, 위로 떠받들어야 했던 오빠와 아래로 철없는 두 여동생들을 건사하며 집안 살림을 떠맡듯 희생했던 가난한 집의 맏딸로서의 삶은, 자신의 이익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며 이리저리 선을 넘나들었던 회색분자인 내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안으로만  침잠했나는 형제자매들의 삶에는  무심했었나 보다. 가끔씩 그들과 옛일을 곱씹을 때면 함께 했던 추억들이 내 기억에 그렇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몇십 년을 거슬러 언니의 집에서 3일 동안, 알게 모르게 결혼 이후 그녀가 살아왔던 삶을 반추할 수 있었다.

어렵게 시작해 이제 남부러울 것 없이 안정된 삶을 사는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 동안의 회사생활을 거치긴 했지만 결혼하고서는 형부의 외조에 최선을 다하며 딸 셋을 어엿하게 키워낸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부부 사이에 금슬은 말할 필요도 없이 화목한 환경 속에서 자란 조카들 또한 구김살 없이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한 때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꿈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 언니를 답답해 하며 어쭙잖은 훈수를 두기도 했었다.


 가방끈이 좀 길다는 이유로, 먹물이 좀 들었다는 이유로 꿈과 이기심을 혼동하며, 또 행복을 이리저리 재단하며,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남편과의 다툼에 여념이 없었 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먹어도 먹어도 채울 수 없는 허기 때문에 끝없이 탐욕을 갈망하는 아귀처럼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실체 없는 행복좇아 이리저리 찾아 헤매느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날따라 나 자신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허접한 지식이 쌓여 갈수록 마음은 식어가고 머리만 예민해지는 내 모습에서 먼 훗날 굳은 얼굴의 꼬장꼬장한 노인이 그려지는 건 아마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리라.

행복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재단하는데 익숙한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어딘가있을지도 모르는 파랑새를 찾아 애써 먼 길을 에둘러  건 아닐까?

 언니의 삶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본다. 

어쩌면 집에서 애타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기를  고대하있을 나의 파랑새를... 어렴풋이 본 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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