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미 Nov 03. 2022

추궁말고 추모만 하라니...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며...


 추궁 말고 추모만 하라니...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일까?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나라에서 일어났다. 얼마 전 어느 나라 축구 경기장에서 수백 명의 압사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아마 개발도상국이라 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재난이었을 거라 안타까워하며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우리나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인 듯 치부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아니 그 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최근 위상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여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참사 소식을 뉴스로 전해 들었을 때  마치 딴 나라 이야기인 듯 믿기지 않았다. 그저 제 아는 피붙이나 지인의 안부만을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못난 소시민 주제밖에 되지 않았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유족들에게 누가 될까 감히 가타부타 할 말을 찾지 못했었다.

매스 미디어에서 연일 보도되는 소식을 접하면서, 또 정부에서 유독 말을 아끼고 추모만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그 일을 언급하는 것조차 무슨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르는 듯 조심하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드러나는 정부의 허술하고 안일한 대응에 너무나 화가 치밀었다.

주최자가 없어, 혹은 주최자가 아니기에  자신들은 할 만큼 다 했다는 행안부 장관이나 용산구청장의 책임 회피성 발언은 물론,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압사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을 포함해서 100통에 가까운 112 전화를 받고도 어떠한 실질적인 대책 없이 그저 무시하고 넘어간 경찰 등..

확성기를 잡고 군중의 흐름만 좀 통제해줬어도... 구와 구의 방향만 좀 잡아줬어도...

그날 있었던 상황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어이없이 죽어간 그 꽃다운 청춘들이 더욱더 안타까웠다.


 추궁 말고 추모만 하라...

언뜻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강조하는 듯한 이 말을 나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사고 원인을 궁금해하는 모든 국민들의 입과 귀를 틀어 막아 놓은 사이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온 국민이 애도의 물결에 넋을 놓은 그 짧은 기간 동안, 윗선에서는 이 사고가 향후 정부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정보를 모으며 그 대책을 강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걸 유출된 경찰성 내부 문서에서 확인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애도기간이라 못 박은 것이 정부가 책임을 회피할 방법을 모색할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단 말인가?


 애도와 원인 규명은 상반된 것이 아니다. 원인을 묻는 것이 마치 애도를 저해하는 것처럼 몰고 가는 분위기는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이러한 사고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많은 생명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유족에게도 그나마 크나큰 고통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어느 전문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꽂혔다.


 근래 들어 사회 각계각층에서 부쩍 많이 들리는 사건, 사고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자연사'가 소원이라는 차마 웃어넘기지 못하는 말이 유행하는 이유다. 그만큼 그들이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증이기도 하다.


 우리 어른들은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난 한동안 나의 소소한 일상을 쓰는 일마저 부끄러워졌다.

저렇게 꽃다운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어갔는데...

나의 보잘 것 없는 일상...그게 뭐라고...

나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까 추모라는 가면을 쓰고 불의에도 비겁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추궁하고 싶다.

누가, 왜 그랬는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로 비겁한  나 자신을 위로하기보다  진정 누가 잘못했는지 철저히 밝혀내는 그 과정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추궁함으로써  진심을 담아 그들을 추모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는 함께 늙어갈 누군가가 지금 곁에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