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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Nov 20. 2022

내 안으로의 여행

안산 친구 집을 다녀오다.

 오랜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친구 부부가 경기도 안산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소식에 겸사겸사 집들이 겸 이번 모임 장소가 그곳으로 정해졌다.

모임에 참여하는 4쌍의 커플 중 3쌍이 부산, 경상권이라 이번 모임이 결코 쉽게 성사된 건 아니었다.


 안산에 안착한 친구가 남편의 직장과 아이들 교육 때문에 충청도를 비롯해 경기도 내에서 여러 차례 이사하는 동안 마음만 있었지 직접 집을 찾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몇 번의 시도는 있었지만 저마다 생업 때문에 스케줄이 맞지 않아 어그러지길 여러 번, 이번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시키자며 우린 서로 기투합했다.


 3쌍만 모일 기회가 있어 올라갈 방법을 서로 타진해봤는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KTX가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지만 역에서 내려 이동하는데 애로가 있었고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차를 렌트하기도 그렇고 어느 한 집의 차로 같이 이동하는 것이 여행기분을 내거나 비용면에서도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의견을 모았지만 문제는 서로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었다. 주말 오전까지 일하는 친구가 있어 쉽지 않았다. 우린 일단 일요일에 올라가서 1박 하는 것만 합의를 보고 나머지는 차후 카톡으로 다시 논의하자며 그 자리를 파하고 헤어졌다.


 결국 따로 움직이는 걸로 결론이 났다.

우리 부부는 뒤늦게 모임 전 날 조카 결혼식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다른 한 쌍도 이번 기회미리 올라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 온다고 했다. 각자 개별적으로 올라간 후에 일요일 오전에 일이 끝나는 친구가 합류할 수 있는 시간을 고려해 일요일 오후 4시에 안산 친구 집에서 보는 걸논의가 마무리되었다.


 어렵게 성사된 자리였다.

그나마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긋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이번엔 누구랄 것도 없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일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여러 번의 모임 결렬 후, 저마다 말은 안 했지만 이번이 아니면 영영 방문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으리라.


 전날 충남 아산에서 조카 결혼식을 보고 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더 묵은 우리와 아들을 보러 서울구경을 다녀온 친구, 그리고 일요일까지 일하다 길이 막혀 7시쯤에 닿은 또 다른 한쌍과 집주인 부부, 이렇게 4쌍이 안산의 한 양꼬치 집에서 마침내 극적으로 만났다.


 뒤늦게 도착한 팀을 맞으며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손에 술잔을 들며 건배를 외치는 순간,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무슨 마법의 신호탄 이기라도 한 것처럼 저마다의 힘든 여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우린 마치 대학생으로 회귀한 듯 반갑고 들뜬 마음 분위기는 너나없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옛 친구가 이래서 좋은 건가 보다.

갓 스물, 더 이상 아이도,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아직 세상이 날 어찌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나 서로의 마지막 미성년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

이젠 치열했던 청장년 시절을 지나면서 노년시절 또한 함께 하리란 걸 서로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좋든 싫든 긴 시간의 추억을 공유하며, 어느덧  함께한 세월이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지냈던 시간의 배가 넘어선 지금, 우린 잊고 지내다가도 누가 만나자 하면 서슴없이 자신의 시간을 뚝 떼어 흔쾌히 내어주는 그런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렇다고 간이고 쓸개고 다 떼어주고  미주알고주알 개인사를 읊어대는 그런 사이라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그런 끈적끈적한 관계의 결말을 익힌 경험한 터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바운드리는 지켜주는 걸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경계가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그런대로 우리가 괜찮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재혼이나 이혼 같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도 우리에겐 더 이상 이슈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니 서로를 통해 만난 배우자들 또한 친구의 에서, 어느새 시간이 그 경계선마저 희미하게 지워버려 그저 똑같 친구로 자리매김시켜버렸다.


 오랜만에 제법 훈훈한 시간을 함께하기가 무섭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두 쌍의 부부는 다음날 새벽같이 내려가야 했다. 안주인인 친구와 우리 부부만이 집 주변 갈대숲을 산책하며 아쉬운 별의 정이 잦아드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안산에서 5시간을 내려오면서 그동안 친구 부부만이 오롯이 감당했을 거리의 무게감을 뼈저리게 공감했다.

겪어본 자만이 그 힘겨움을 아는 지라, 안산 친구 부부는 자신들을 위해 그 먼 거리를 달려와 준 친구들을 성심성의껏 대접해 주었고 우린 그 마음만으로도 성대한 환대를 받은 듯  마음이 푸근해졌다.


 비록 출발할 때 가졌던 소량의 의무감을 배제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집을 떠나 피붙이와 지인을 찾아보며 잠깐이나마 그들의 일상에 녹아들었던 3박 4일의 일정은 여러 면에서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건 자연을 벗하며 여행하는 것과는 또 다른,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른바 내 안으로의 여행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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