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미 Nov 30. 2022

형광등을 갈며...

형광등에 대한 짧은 담론

 

 세면대 화장실 등 하나가 나가버렸다.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마치 한 배에서 난 쌍둥이처럼 늘 둘이 함께였는데 하나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듯 보기가 안쓰럽고 처량하여 둘 다 갈아 끼우기로 했다. 이왕 교체하는 김에 건넌방 화장실 등도 둘 다 LED로 바꾸자며 남편이 오랜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거실 등도 LED로 교체한 것이 생각났다. 집이 오래되다 보니 여기저기 손 볼 때가 많아진 까닭이다.

 거실 등 세 개 중 하나가 나간 지 오래였지만 무딘 우리 부부는 크게 개의치 않고 남은 2개로 큰 불편 없이 견뎠는데 그 사이 주방 등으로 말썽이 옮겨왔다.

 

 마치 마지막 생명의 끈놓기 직전, 임종을 앞둔 사람의 가물거리는 의식처럼, 켜질 때 희미한 깜박거림이 몇 차례 지속되다가 불빛을 토해내긴 했지만 평소보다  밝기가 약했다. 그래도 위태위태하게 버티는 가 싶더니 마침내 그 수명을 다했는지 얼마 가지않아 그만 꺼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자 미련한 우리 부부도 마음이 바빠졌다. 아무리 거실 등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불 꺼진 주방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마치 이벤트 기간이라며 할인하는 곳이 있어 이참에 집안에 있는 가능한 모든 등을 LED로 바꿔버렸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우리 집도 마지못한 상황이었지만 마침내 대세의 흐름에 올라탄 듯 형광등의 시대를 보내고  LED의 시대에 합류한 꼴이 되었다.




 LED에 밀려나기 전 형광등 또한 백열전구의 자리를 꿰찬 이력이 있었다.

필라멘트가 달궈져 빛을 내는 백열전구와 달리 형광등은 진공관 내 수은과 아르곤 가스의 방전을 통해 발생하는 자외선을, 내부에 칠해진 형광물질을 통해 가시광선으로 바꾸어 빛을 발산하는 조명장치이다.

 얼마 전 읽은 건축에 관한 도서에서 형광등의 보급이 건축의 역사 또한 바꿨다는 내용이 생각났다.

형광등이 보급되기 전 건축의 주요 핵심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태양을 우선시한 자연채광이었다.

사람들은 햇볕을 쐬기 위해 창을 내고 창가에 살았으며 건축가들 또한 자연채광을 건물 내부로 어오기 위해 결과적으로는 재미나고 창의적인 설계를 고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형광등이라는 값싼 인공조명이 그 위용을 드러내자 건축물에겐 더 이상 태양에 대한 짝사랑을 지속할 이유가 사라다. 햇볕을 들이기 위한 각고의 디자인에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등을 달 정도의,  머리에 닿지 않을 만큼의 천장만 확보한 채 위로 마구 포개어 놓은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건물 곳곳에 형광등만 달면 모든 빛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농경시대 땐 하늘을 보며 햇볕 아래에서 그에 맞춰 일하고 쉬기도 했는데 어느덧 형광등 아래, 갇힌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위치를 오프 하지 않는 한 계속 밤에도 낯처럼 일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심지어 창도 없는 공간에서 자연과 분리되어,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라이프스타일로 살기 시작했다고 작가가 씁쓸해하던 이 떠올랐다.


 창의적인 건축의 적으로,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했던 형광등도 백열등을 밀어낸 것처럼, 효율성과 수명, 통칭 '가성비'라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의 흐름 속에서 또 그렇게 LED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며 우리의 생활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인공적인 빛에 의존하는 우리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더 밝고 값싼 조명 아래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일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형광등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저 상대방의 말을 보통 사람보다 조금 늦게 이해하는 사람을 형광등에 빗대어 비유한 표현이 더 이상 흔하게 통용되지 않으며, 간혹 그러한 표현을 막딱뜨린 우리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뜻을 네이버에서 찾아봐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의미할 따름이다.

 초기 형광등은 몇 번 깜박이다가 켜졌다는 사실을 나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상기할 정도로, 추억을 품은 물건 하나가 과거와 함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에 아주 조금 아쉬움을 느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안으로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