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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Dec 19. 2022

시험은 정말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도일까?

수능을 마치고  - 말콤 글래드의 [브링크]에서 인용

 2023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지난 15일부터는 수시 지원에 대한 합격 여부가 통보되었다. 동시에 추가합격 순번도 부여되는 지라 주변의 고3 수험생이나 재수생 자녀를 둔 지인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나날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하고 있는 둘째는 생각보다 성과가 좋지 않아 추가 합격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라 며칠 더 마음을 졸일 생각을 하니 모든 게 손에 잡히지 않고 어수선했다.


 재수를 시키면서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제가 헤쳐나가야 할 일이며 제 인생이라 생각하고 무심하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미혹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선택한 책의 한 부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결국 돌고 돌아 '시험'이었다.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질문에  잠시 망연자실해졌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시험이라는 것에 대단한 신뢰를 나타낸다. 시험이야말로 응시자가 가진 능력과 지식의 척도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물론 위에 인용한 내용은 책의 극히 일부분이다. 나에겐 [아웃라이어]의 작가로 친숙한 말콤 글래드의 유명한 베스트셀러 [브링크]를 읽다가 요즘 나를 괴롭히는 '시험'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잠깐 살펴보자면 '브링크'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책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블링크 blink는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말한다. 순간적인 판단 snap judgment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우리가 보통 직관 또는 통찰이라고 부르는 능력과 비슷하다. 이 책은 이 능력이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이 능력이 언제 필요하며, 언제 경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또 이 능력이 발휘된 순간과 이 능력의 오용으로 실패한 순간을 우리 생활 속에서 일어난 생생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책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브링크'가 일어나는 무의식의 영역을 설명하던 중 작가는 사전 주입된 행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 많은 사람들이 브링크를 경험하지만 누구도  순간적인 판단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를 접한 저자 무의식의 위대한 본질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예로 든 경우였다.


저자는 여기서 몇 가지 실험을 소개하며 우리들의 의식 저 뒤쪽에 숨어있는 무의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지 역설한다.


<실험 1>

 

 5개의 단어가 한 묶음이 된 목록 10개를 보여주며 각의 묶음에서 가능한 한 단어 4개를 골라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드는 과제였다.

그런데 피실험자들이 이 테스트를 마치고 나갈 때의 걸음걸이가 들어올 때보다 훨씬 느려졌다는 것이 연구결과로 밝혀졌다.

그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만 실험에서 제시한 단어들이 모두 노인에 관한 것들이었다는 걸 그들의 무의식은 이미 알아챘던 것이다.


<실험 2>


또 다른 실험은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에서 제시할 문제를 풀기 전에 5분 동안 한쪽은 교수를, 다른 쪽은 축구 훌리건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교수집단이 훌리건 집단보다 더 총명하거나 집중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정답률이 각각 55.6%와 42.6%의 차이가 났다고 한다.

교수집단은 단지 총명한 기분을 느꼈고 스스로 총명한 그 무언가와 결부시킴으로써 문제들을 훨씬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실험 3>


저자는 흑인 대학생과 졸업인증시험에서 가려 뽑은 20개 문항을 활용해 더욱더 극단적인 테스트 실시했다.

사전 설문지에 인종을 밝히라는 주문을 한 것인데 이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흑인 학생들이 시험에서 맞힌 문항 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학업 성적에 관련된 온갖 부정적인 전형을 사전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는 걸 말해준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성적 하락의 요인을 물으면서 인종을 밝히라는 주문이 괴로웠냐는 질문에 대한 흑인 학생들의 대답이었다.

저마다 그렇지 않다라든가 난 그저 여기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무의식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가운데서 저자는 앞서 언급한 시험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명문 사립고 출신의 백인 학생이 도심 학교 출신의 흑인 학생에 비해 SAT(대학 진학적성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치자. 정말 백인 학생이 더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백인으로서 명문고에 다니면서 줄곧 '총명하다'는 생각을 사전 주입받아서일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서울과 지방의 엄청난  학력차를 느끼면서도 정치나 교육정책에 의해 알게 모르게 사전 주입된 배경은 무시한 채 그나마 시험이 공평하다고 신뢰했던 나의 생각이 너무 순진했던 건 아니었을까?

 작가의 지적처럼 우리가 스스로 자유의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크나 큰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여러모로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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