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미 Dec 17. 2022

돼지와 아파트

촤근 아파트 가격 폭락에 대한 소회

 요즈음 경기가 심상찮다.

집 밖만 나서도 온 몸으로 체감하는 물가와 이상기후처럼 고공행진 중인 금리 외에 나머지 지수들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특히 지금까지 상승을 위한 겸손한 퇴보는 있을지언정 꺾일 일은 없다는 듯 불패의 신화를 써가던 집값, 그중에서도 아파트 가격의 하락이 연일 매스컴의 주요 시간을 차지하며 세상에 공포를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 빌라 1100여 채를 보유한 소위 빌라 왕이 사망하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세입자들의 문제가  집값 폭락과 연계되어 불거지면서 사회 이슈로 대두되기도 했다. 빌라 왕이라 불려진 이는 1100여 채의 빌라 대부분을 전세를 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식으로 집의 수를 늘려갔는데 대부분이 소위 말하는 깡통전세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업자의 말만 믿고, 혹은 사정이 급한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도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기대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계약을 했으리라.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집주인이 사망해 버리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계약해지를 통보할 당사자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보험에서도 전세금을 변제받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주 MBC 피디수첩에서는 부동산의 이러한 기이한 현상에 대해 집중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다 못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폭주하던 부동산이라는 막차에 몸을 실은 건 대부분 MZ세대라 불리는  2030이었다. 거품이 꺼지기 직전 무슨 거대한 음모가 희생양을 노리듯 미친 듯이 폭등하던 부동산의 실체를 직접 목격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빌라 왕이 하던 수법대로 전세를 낀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최대한 끌어 쓰며 무리하게 집을 사댔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 집값의 폭락과 함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폭으로 뛰고 있는 금리 상승이 그들의 목을 서서히 죄여 오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 제 한 몸 편히 누일 곳이, 우리 가족 오손도손 살아갈 터전이 이런 비정상적인 탐욕의 도구가 되었을까?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작가가 아파트를 돼지에 비유한, 다소 생뚱맞지만 소박함이 느껴지는 구절이 생각났다.

 

 에 따르면 과거엔 어느 한 문명이 살아남기 위해선 식량 확보가 일 큰 문제였다고 한다. 식량 부족으로 아사할 경우 종족의 존재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므로 어떻게 서든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그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였으리라.

 식량을 확보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각기 다른 장소에 다양한 작물을 나누어 심음으로써 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분산하려는 지혜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수확한 식량을 오래 저장할 수 있는 발효나 염장 기술 또한 발달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김치나 젓갈, 장아찌 같은  저장식품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식량 확보의 주요한 방법으로 가축을 키웠다.

고대에는 주로 돼지를 키웠는데 남는 식량을 돼지에게 먹이로 주고 기근이 들 때 그것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식량저장 효과를 누린 셈이다.

비슷한 경우로 우리나라에선 돼지 대신 개를 키웠다.

비교적 식량이 풍족할 때 개에게 남은 음식을 던져주며 키우다가 필요할 때 개를 잡아 부족한 식량과 단백질을 보충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뜬금없이 아파트가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작가는 지금의 아파트가 과거돼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식량은 곧 생존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돈이 그 역할을 한다.

과거에 식량 저장의 한 방편으로 돼지를 키웠다면 현대에는 돈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산다. 부동산도 돼지나 발효식품처럼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가 기근을 넘기는 방식이 되듯이 현대인들에게 돈이 부족한 시기를 넘기는 방식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에서 아파트는 환금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돼지의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중산층 국민들은 은퇴 후 아파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돼지와 아파트는 다르지만 같은 기능을 하는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렇게 아파트는 '생존'이라는 당면과제에서 필요하면서도 절실한 유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필요성보다 절실함에 더 큰 방점이 찍힌 비정상적인 욕망은 결국 탐욕을 불러일으켰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시기가 도래한 느낌이다.


 혹자는 말한다. 주변 변두리 땅이나 그렇지 핵심지역은 끄떡없다고... 노른자위는 약간의 미덕을 발휘할 뿐인데 언론들이 너무 호들갑을 다고...

어쩌면 본진이 다 해 먹고 나간 자리에 잔챙이들이 먹을 것 없나 기웃거리다 옴팡 뒤집어쓴 형국은 아닐까 저어되기도 한다.


 살기 위해 남은 먹이를 던져주며 살찌웠던 돼지들이 이제는 빚을 내서라도 자기들의 먹이를 내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주변에선 똥돼지들과 생존을 담보로 한 진흙탕 싸움이 한창인데  어디선가 황금 돼지들을 끌어안고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섬찟함이 영끌족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이 준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