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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Dec 12. 2022

자연이 준 선물

제철 재료 활용하기

 

 이웃에 사는 지인이 주말농장에서 수확했다며 가끔씩 호박이며 가지 등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며칠 전에는 배추 통과 무 한 꾸러미를 보내왔다.

 올해 마지막 농사를 정리했더니 수확한 양이 제법 많아져 가까운 지인들에 알음알음 나눠주고 있다는 그녀는, 이것 또한 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내비쳤다.

 아들들떠나 있어 남편과  둘 뿐인 우리 부부가 소화하기엔 다소 많은 양이었지만 난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전해받은 채소꾸러미를 요리조리 살피며 요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리하느라 마음이 바빠졌다.


 가끔씩 모임에서  나이 또래의 주부들을 만나면 아이들도 장성하고 남편들도 거의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오는 덕분에 저마다 집안일이 줄고 요리할 일도 드물어 좋다는데 난 느지막이 음식 만드는 재미에 흠뻑 빠졌었다.

 그렇다고 요리에 무슨 일가견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올 들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이제야  음식 만드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게 맞는 말이다.

평소 무심했던 식자재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고 이리저리 요리법을 찾다 보니 그 무궁무진함에 놀라움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동해 눈을 반짝이며 그것을 탐구하듯 나 또한 오십이 넘어 접한 식자재의 다양함에 끌렸을 뿐이다.


 매년 어김없이 오고 가는 계절에 난 또 왜 그리 무심했던지 생활의 무게로 덧씌워져  웬만한 외부 자극에도 반응이 없던 두터운 피부가 마치 한 꺼풀 벗겨진 듯 가벼워져서 이젠 제법 바깥세상의 접촉에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지만 새삼 계절을 피부로 느끼며 철마다 제각각의  결실들을 내어놓는 자연이 너무 신기했더랬다. 기후변화로 좀 더 일찍,  때론 약간 더디더라도 어김없이 자신들의 결실을 인간에게 나누어 주는 자연이 그렇게 대견수가 없었다.

한 무리한껏 베풀고 자취를 감추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또 다른 종류의 무리가 제 풀어놓는 모습이 무슨 자선시합을 하기로 내기한 집단처럼 우리 인간의 먹거리를 보살피는 모습이 말 그대로 '어머니 대지'라는 표현에 무릎이 탁 쳐질 정도였다.


 배추 2포기와 무 몇 통받아 든 내 머리와 손가락이 요 며칠 바빠지기 시작했다. 은혜로운 재료를 받았지만 최소한의 노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차마 입까지 닿지 못하는 법, 그래서 세상의 이치는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도움을 받기 위해 휴대폰에 키워드를 입력하자 한 가지 식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이 쏟아졌다. 모바일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레시피의 세상, 이번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창의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배추 하김치 아니면 겉절이라는 단순한 나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졌다.

간단한 김치와 겉절이는 말할 필요도 없고, 배추 겉잎을 활용한 배추 우거지 된장국, 배춧잎을 부침가루에 묻혀 구워낸 배추전, 배추의 연한 속으로 싸 먹는 쌈, 배춧잎을 채 썰어 다양한 야채와 섞어 먹는 샐러드 등 그 변신은 끝이 없었다.

무는 또 어떤가? 평소에 즐겨해 먹는 채나물과 피클, 아찌도 있지만 이번에 채칼로 슬라이스해 무쌈도 담아보았다.


 날을 잡아 실험을 하듯  이것저것 해 먹어 보았는데 제철 재료라 그런지 원재료 자체의 달큼한 맛이 서툰 요리 솜씨를 충분히 커버해주었다.

남편을 피실험자 삼아 이것저것 해먹고도 아직 재료의 반 정도가 남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선물이 쓰레기가 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 내 마음이 또다시  바빠졌다.

이번 주말엔 들로 어떤 특별식만들어 볼까?

부끄럽지만 오십넘어 비로소 음식 세계에 입문한, 요리 초짜인 나는 아직도 의욕만 앞설 뿐 하찮은 솜씨는 그저  원재료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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