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지우기

오늘의 시도- 화장실 치우기

by 반야심경

오늘은 녀석의 화장실을 치웠다. 보검이는 우리와 화장실을 함께 썼다. 덩치답게 대형 화장실을 써서 인간과 녀석의 변기 크기는 다를바 없었다. 고양이별로 떠나기전 며칠이나 화장실을 아예 쓰지 못한 탓에 고양이 모래도 새것이다. 며칠간 화장실앞에 쭈구려앉아 '왜 화장실을 못가니. 유산균을 타서 먹일까.' 하며 애가 탔었다. 그 식탐 많던 녀석이 마지막에는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혹시나해서 사온 42000원짜리 영양제형 츄르는 한 포도 못먹고 그대로 남아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녀석의 화장실을 물이 빠지라고 뒤집어 놓았다. 퇴근하고 남편이 돌아와서 보면 속상할 것도 같았다. 더이상 쓰지 못하는 녀석의 물품. 더이상 곁에 없는 그 녀석.....

준비하지 못한 이별은 그렇게 생활 곳곳에 남아 어느 때고 무방비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열번 울거 한번으로 줄여줘야할 것 같아서 씻은 녀석의 화장실을 안보이게 베란다 한켠으로 옮겨 말렸다. 유난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비상 상태다. 세심하게 신경써야한다. 적어도 슬픔이 우리를 잠식하지 못하게. 슬픔이 우리의 일상에 공존할 수 있는 수준만 되어도 감사하다.


11월 15일 쓰고

11월 23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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