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혐오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by 친절한다정씨



최근 열린 에이미 시상식에서
최연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언 쿠퍼가 나오는
<소년의 시간>을 보았습니다.

인물들 간의 대화와, 원테이크 촬영기법이
정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게 했어요.

총 4부작으로 길지 않아서 보시기 쉽고,
각 회차마다 인물과 장소를 나누지 않고
한 장면으로 쭉 이어가는 원테이크라서 몰입감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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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3살 소년 제이미가 어느 날 아침,
또래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집안에서 체포됩니다.
변호사가 오고, 형사들에게 취조를 받게 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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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경찰서

형사들에게 급습당하다시피 체포된 제이미와 가족들.
그들은 오히려 공권력에 폭력을 당한 듯한 모습으로 1화에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부당한 체포와 강압적 수사를 문제 삼자,
형사는 “살인 혐의가 강력할 때는 문을 부수고 체포할 수 있다”라고 말하죠.

경찰서에서도 제이미는 “잘못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간호사에게 정신적 질병이나 지적 경계가 없음을 확인받은 후,
비로소 피의자 신분이 되어 조사를 받게 됩니다.

(미성년이라도 법 앞에서는 성인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했어요.)

이 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제이미가 소변검사, 알몸검사, 피검사, 지문검사를 받는 과정입니다.
그 모든 걸 아버지가 지켜보며 느끼는 무기력함과 수치심, 분노.
그 감정이 화면을 뚫고 나왔어요.

결국 제이미는 끝까지 부인하지만,
CCTV와 폭행 영상이 나오자 아버지의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래도 그는 아들을 믿기로 하죠.

1화는 “법과 치안의 힘은 언제나 절대적이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끝납니다.



2화 — 학교

살해 동기와 살해 도구가 된 칼의 출처를 찾기 위해 형사들은 학교로 갑니다.
학교는 엉망입니다.
수업은 영상으로 대체되고, 선생은 자리를 비우며,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욕을 하고 서로를 비하합니다.

형사는 죽은 소녀의 친구들을 만나며
이 사건의 또 다른 층위를 마주하게 됩니다.
온라인 괴롭힘, 사이버불링.

죽은 소녀 케이티는
제이미와 친구들을 인스타그램에서 집요하게 조롱했습니다.
초록 하트 즉 ‘인셀(비자발적 독신)’의 표시를 달며.

결국 제이미의 분노는 그곳에서 자라났죠.
이 에피소드에서 형사는 자신 또한
아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 아이가 혐오자가 되기 전에…”
2화는 그렇게 끝납니다.




3화 — 상담실

이 영화의 명장면.
임상심리상담가 앞의 제이미는 똑똑하고,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려 애씁니다.

> “난 케이티를 만질 수도 있었지만 안 했어.
그럼 난 오히려 더 나은 거 아니야?”



그의 말은 혐오라기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아이의 자기혐오의 변형된 표현이었습니다.

케이티를 향한 분노, 세상을 향한 분노,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분노가 뒤엉켜 있죠.

“여자들은 상위 20%의 남자에게 끌린다.”
제이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가장 밑바닥에 두었습니다.
결국 상담사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그건 제이미를 위한 눈물이자,
그를 여기까지 내몬 어른들을 향한 눈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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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남은 자들

1년 3개월 후. 제이미는 청소년 보호소에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살인자의 가족’으로 살아가죠.

어느 날, 아버지의 차에
“강간범의 아버지”라는 낙서가 남겨집니다.
아버지는 폭발합니다.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어요.

그리고 걸려온 전화 한 통.
제이미의 목소리.
“아빠, 나 이제... 내 죄를 인정하려 해.”

가족은 무너지고,
아버지는 아들의 방으로 가 곰인형을 눕히며
“미안해”라고 속삭입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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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감상

마음이 단단한 누나와 달리, 제이미는 약했습니다.
부모는 몰랐죠.
그의 내면에 혐오가 자라나고 있었다는 걸.

온라인에서 형성된 잘못된 신념과 분노,
그걸 ‘방 안의 안전함’으로 착각한 어른들.
제이미는 세상을 혐오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미워한 아이였습니다.

그를 구할 수 있었던 건 대화였을 텐데.
부모의 무심함이 만든 공백을,
온라인이 대신 채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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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서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유튜브, 숏츠, SNS, 게임, 그리고 이제는 AI까지 —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흔드는 요소가 너무 많아요.

저희 아이들은 아직 11살, 9살.
인스타, 틱톡은 허락하지 않고
스마트폰 사용 시간도 제한하고 있지만,
사춘기가 오면 “왜 안 돼?”라는 질문이 늘어나겠죠.

대화로 설득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보는 세상을 부모가 다 알 수 있을까요?

> 온라인은 아이들에게 손바닥 위의 지구별입니다.



그 별은 부모에게 너무 멀어요.
그래서 이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의 시간> 이후 실제로 ‘청소년 SNS 금지법’이 발의되었다죠.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이 현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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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 영화,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꼭 추천드립니다.
불편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범죄가 아니라,
어른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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