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이야기
젊었을 땐, 젊어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반복하게 되는 말이 있다.
"내가 너희만 할 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금의 삶은 조금 더 나아졌을까."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즐거움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도서관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지식과 이야기의 매력을 더 일찍 알아보았더라면, 지금의 삶은 조금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종종 후회한다.
지적 호기심을 외면했던 시간들을, 풀리지 않는 문제에 끝까지 몰입하지 않았던 자세를, 그리고 배움이 결국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던 지난날들을.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 시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삶을 살다 보니 나에게 배움을 건네주는 이들을 만날 기회는 자연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좋은 강연을 찾아보게 된다.
몸은 집에 머물러 있더라도 마음과 생각만큼은 단단해지고,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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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왜 그 시절에는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떠올린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젊었을 땐 너무 젊어서, 10년 후의 나를 상상하는 일이 참으로 막막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반 친구들과 함께 타임캡슐을 묻은 기억이 있다.
10년 뒤 열어보자며 약속했고, 실제로 10년 뒤인 스물여덟에 열어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 적힌 말들은 의미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어 부끄러움에 이내 버려버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10년 후의 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스물셋에 취업을 준비하며 자기소개서에 ‘입사 후 포부’, ‘5년 후 계획’을 작성하라는 문항 앞에서 긴 한숨을 쉬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바쁜데, 왜 그런 질문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물셋의 나는, 열여덟의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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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에 취업한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러한 질문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계발서나 과학, 지식 분야의 책은 잘 읽지 않았고, 대부분은 문학을 중심으로 책을 골랐다.
그 외에 심리학, 철학, 사회과학 서적을 간헐적으로 접하긴 했지만, 삶에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다.
책은 읽었지만, 삶을 통해 체득한 경험이 부족했던 탓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은 희미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막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생긴 시간적 여유가 그 계기가 되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떠올리지 않았던 고민들이, 이제야 비로소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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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즈음의 나이.
자연스레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이 깊어진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건전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을 것인가.
배운 것이 있다.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유연성, 균형 감각, 근력이 필수적이라는 점.
나이가 들수록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인지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평생 학습과 꾸준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도.
머리를 쓰고, 손을 움직이고, 스스로를 훈련하는 삶은 늙음 앞에서 작지만 중요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마흔이 된 이후로는 사소한 통증에도 민감해진다.
그간 아무렇지 않던 부위에서 불쑥불쑥 신호가 온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노년기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젊었을 땐 2년 후의 모습조차 상상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80세, 100세의 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그 상상 속에서 나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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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듣고, 쓰고, 걷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변화와 노화에 저항하지 않고, 유연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늙고 싶다.
이처럼 단순한 바람일지라도,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작은 노력을 보태며 하루를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