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원했던 아이에게

11살의 나에게 작별인사

by 친절한다정씨


어느 날,
가까이 지내던 나이 지긋한 이가
내게 말했다.

"넌 눈치 보고, 사람 기분을 너무 살핀다."

본인도 그 말이 면전에 대고 할 말은 아니었다며
실수였다고 했지만,
그 한마디가 자꾸만 마음에 맴돌았다.

그 사람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그 말에 동요됐고, 흔들렸다.

어릴 적 나는,
다섯 형제 사이에 치이며 자랐다.
형제들 싸움이 지긋지긋했고,
부모님의 다툼도 지겨웠다.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의 기분을 살폈다.
비위를 맞추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조용히 부모님의 대리 역할을 하는 것.
그게 사랑받는 방식이었고, 생존이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게
몸에 밴 것 같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그 모습 그대로 시집을 갔다.
그리고 그 모양새 그대로… 마흔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다툼이 싫다.
소중한 사람과 다투면
온 우주가 흔들리는 것 같다.

불화를 피하고 싶어서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의 평온한 삶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네가 그렇게 바라던 평화 아니었니?"

맞다.
그 평화를 원했으니까.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된다.

나는 마흔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확신에 찬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는 것을 아는 용기’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만
눈치 보며 살고 싶다.

이제는 내 감정을 먼저 살피고 싶다.

요즘은
그러려고 많이 애쓰고 있다.

전보다 내 감정을 먼저 알아보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제일 먼저 마음을 써보려 한다.

그리고
불가피한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나를 돌보며 살고 있다.

문득,
11살, 12살의 내가 떠오른다.

그 아이를 가엾게 여기던 나와
이제는 작별할 때다.

바이바이.

난 이렇게 자라났고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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